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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없는 반듯한 길을 보면서 그를 떠올렸다. 그는 길눈이 밝아 한 번 온 길은 못 찾는 법이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홀림길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던 골목길에서는 주눅이 들었다. 우리는 자꾸 길을 헛짚어 어둑어둑해진 길을 한참이나 헤매면서도 뭐가 재미있는지 자꾸 깔깔댔다. 그렇게 그날 함께 길을 헤맨 그는 오랫동안 삶의 길을 함께했다. 같은 회사에 다녔고, 같은 동네에 살았다. 내가 걷는 길에는 늘 그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몇 해 전 가을날 혼자서 훌쩍 먼 길을 떠나버렸다.
집이 허물어지면 새 건물이 들어서고, 길이 없어지면 새 길이 놓인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겨울 연탄재를 뿌려 놓은 비탈진 골목길을 오르내리고, 여름에는 구멍가게에서 쭈쭈바를 사 먹던 이들의 이야기가 향수 어린 옛이야기가 되었듯이 높은 아파트에서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고, 햄버거 가게에 앉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그들에게는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다.
‘사라지다’에는 ‘살다’와 ‘사르다’의 뜻이 담겨 있다. ‘사라진다’는 ‘살다’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말이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라지지도, 사르러 들지도 않는다. 아름답게 자신의 삶을 사르렀던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 그를 생각한다. 기억한다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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