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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기고]4차 산업혁명과 고용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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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이 앞장서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오늘날 경제의 미래를 약속하는 엘도라도가 되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주요 경제 선진국은 산업구조의 대전환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주도적 생산혁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결합된 가상물리생산 시스템과 스마트 공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자율주행, 스마트빌딩, 핀테크, 블록체인, E헬스 등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엔진이며, 이러한 영역은 생산노동의 디지털화를 동반한다. 자동화를 포함한 노동의 디지털화는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노동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총고용의 축소, 숙련 훈련의 다변화, 노동 유연성의 증가와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는 노동의 탈경계화는 노동의 디지털화가 초래할 대표적 우려들이다.

경향신문

옥스퍼드 대학교의 프라이와 오스본 교수의 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컴퓨터가 일자리 절반을 대체할 거라는데, 알고리즘으로 전환돼 자동화되기 쉬운 단순 직무뿐 아니라 숙련화된 일자리조차 적잖게 소멸될 거라고 전망해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과거 직무와 직업을 동일시하던 포디즘 시대의 관점에서 출발한 거고 플랫폼 노동이나 한 개인이 다양한 복합직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직업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기술로 고용이 안정된 상용직 일자리를 얻기를 기대하는 세상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리라는 것도 분명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절된 노동시장의 적폐를 청산하기에도 바쁜 판에 새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만만치 않다. 기술 발전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위해서 정치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함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라면 현재 고용에 대한 어떠한 고민 없이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기술 담론으로 채색된 국내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를 보다 노동 및 사회정책적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4차 산업혁명에 기초한 혁신성장을 내세운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과거 정부의 창조경제와 별반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첨단 기술이 개발되면 고용의 낙수효과라도 생기리라 믿는 것일까? 당장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주무 장관 외에는 어떤 고용전문가도 배치돼 있지 않으며, 산업분야별 기술정책을 어떻게 고용과 연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없다. 단언컨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어떤 기술적 성과를 내도 중단기적으로 상용화와 고용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공학기술에 관한 연구는 지속해야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고용시장의 엘도라도가 도래하리라 믿는 것은 천진난만한 자세이다.

직업훈련의 내실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용 대란을 피할 방도가 없다. 국내에서 자주 소개된 독일의 ‘산업 4.0-노동 4.0 프로젝트’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정작 변화된 모습은 하나도 없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노동의 디지털화는 사람을 배제한 자동화가 아닌 기술과 인간의 협력 속에서 완성돼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을 대학교나 직업훈련기관에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만큼 현장 수요에 부응하는 숙련훈련의 제공은 필요하며 일정 수준에서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다. 독일의 산업 4.0은 노동의 디지털화에 대한 정책적 전략이 치밀히 준비된 대표 사례다. 기업별 기술경쟁을 넘어 최소한 산업별로 노동의 디지털화를 어떤 방식으로 표준화할지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직업훈련기관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오늘날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민간 훈련기관의 상당수는 현장의 수요와는 무관하게 자격증 관리기관이 되어 세칭 장롱 자격증을 남발하고 있다. 기술훈련 수준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노동부의 훈련사업비를 따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행정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여전히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는 강고하다. 노동행정의 적폐 청산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인구절벽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역설적으로 줄어드는 인구는 교육 및 훈련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을 더 키울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제공한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숙련노동의 공급이 줄어드는 위험에 대비해 노동의 디지털화에 대응하는 높은 수준의 직업훈련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생산성 확보와 고용안정을 상호교환하려는 지혜와 노력이 없다면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암담해질 뿐이다.

임운택 | 계명대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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