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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사설]저유소 탱크 위 잔디가 18분간 타도록 몰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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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송유관공사 고양저유소 폭발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이 9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스리랑카 국적 노동자 1명을 붙잡아 중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인근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피의자가 날린 풍등이 300m 날아가 저유소 휘발유 탱크 옆 잔디밭에 떨어지면서 화재가 일어나 저유소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는 폐쇄회로(CC)TV 영상도 공개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장난 삼아 날린 풍등 하나로 이런 큰 사고가 났다니 황당하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이번 사고가 평소 예상하지 못한 여러 가능성이 잇따라 겹쳐야 발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송유관공사 경인지사가 저유 탱크 내부에 불이 옮겨 붙기 전 최초 18분간의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휘발유 탱크 외부에 화재 감지센서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는 경찰의 설명은 더욱 참담하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탱크 외벽에는 감지센서가 없었지만 저유소 지붕인 ‘플로팅 루프’ 위에는 불꽃 감지장치가 설치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감지장치는 있었지만 화재가 발생한 곳과 불꽃 감지장치 간에 거리가 있다보니 화재를 감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없는 변명이다. 더구나 사고 당시 관제실에는 직원 여럿이 근무 중이었는데 폭발 전까지 화재가 난 것도 몰랐다고 한다. 육안으로 확인할 기회마저 놓친 것이다. 저유소 곳곳에 설치된 46대의 CCTV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18분 동안 관제소에서 잔디가 타고 있는 것을 파악했더라면 폭발은 막을 수 있었다는 가정이 충분히 성립된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인재가 겹쳐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야 한다.

이번 사고가 난 곳은 7700만ℓ가 저장돼 있는 서울북부저유소의 14개 저장탱크 중 하나였다. 자칫하면 더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국내 유일의 송유관 운영 기업으로 대형 저유소시설을 통해 경질유 소비량의 58%를 수송하고 있다. 이런 중요하고 위험한 시설이 안전관리에 허술하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유증기로 인한 내부 폭발은 물론 어떤 외인에 의한 사고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차제에 저유 시설 전체에 대한 정밀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송유관공사 지분을 갖고 있는 정유사들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송유관공사와 주주정유사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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