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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정정 불안에 통화정책 失機까지…신흥국위기 급속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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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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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 확대 이후 한숨 돌리는 듯했던 신흥국 금융시장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터키와 인도 등 여타 신흥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터키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17.75%에서 24%로 6.25%포인트나 인상하면서 시장 안정에 힘썼지만 역부족이었다. 터키의 9월 인플레이션 지표 중 핵심물가(core inflation)가 24%까지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의 대응이 한발 늦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추가 긴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올 들어 40% 가까이 빠지면서 사상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는 터키 리라화가 또다시 폭락하는 사태를 연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 루피화도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특히 지난 5일 인도중앙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하자 투자자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금융권 유동성 경색 조짐 심각성에 대해 정책자들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프라카슈 사크팔 ING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인도중앙은행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루피를 붕괴시킬 수 있는 충격적인 결정"이라며 "루피를 자유낙하 길에 남겨뒀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루블화도 불안하다. 해킹 스캔들로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의 제재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상승이 루블화를 받치고 있지만 추가 제재가 가시화하면 하락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EU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등 국제기구에 대해 광범위한 불법 해킹 활동을 한 러시아 정보요원을 상대로 추방·기소 등 동시다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오는 24일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은란라 네네 재무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네네 장관 사임 소식에 시장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롤런드 미스 신흥시장 퍼시픽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이라며 "압박을 오래 받을수록 대응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증시 역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미국 금리 상승 여파로 휘청거렸다.

8일 신흥국 주식시장을 반영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5% 하락해 17개월래 최저치인 995.5를 기록했다. 이는 고점을 기록했던 지난 1월에 비해 약 22% 하락한 수치다. 브라질 증시가 급등하지 않았더라면 지수 하락 폭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 지수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 성향 후보가 큰 표차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는 소식에 4.57% 급등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신흥국 통화 가치가 이미 크게 하락한 상태인 데다가 미·중 무역전쟁, 이에 따른 중국 경기 둔화 등이 신흥국에 광범위한 위기를 유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는 것도 신흥국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7년 만에 최고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 자금을 빼내 미국 자산에 투자하는 움직임이 확산할 위험이 있다고 WSJ는 경고했다.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은 연일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상하이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고 위안화 가치가 오르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신흥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FT는 이날 위안화 약세로 인도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 통화 가치가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랍 서바라만 노무라 세계 신흥시장 경제담당 책임은 FT에 "중국은 잠재적으로 신흥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중국이 지준율을 추가로 낮춰 은행 대출을 확대하는 등 통화정책을 더 완화한다면 그 효과는 달러에 대한 위안화 약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상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언급하며 "위안화 약세는 이들 국가 통화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약세가 이어지면 미국 달러 표시 채권을 보유한 중국 기업들에 역풍이 불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계 부동산업체 34곳 중 12곳만이 외화 표시 채권 발행 시 위험에 대비한 것으로 보고됐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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