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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외국인 때문에 불바다"…'제노포비아' 다시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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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외국인 범죄마다 확산되는 혐오…국적, 인종 특정하는 보도 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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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에서 휘발유 저장탱크 폭발로 큰 불이 나 소방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진화작업을 벌였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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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으로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화재의 원인이 한 외국인 근로자가 날린 풍등으로 밝혀지면서다. 용의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며 외국인 혐오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격화될 조짐이다.

9일 경기 고양경찰서는 지난 7일 대한송유관공사 경기지사에서 발생한 화재와 관련 중실화 혐의로 외국인 근로자 A씨(27)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화재 발생 당일 오전 10시32분쯤 인근의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저유소 잔디밭에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곧바로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저유소 화재사건 관련 기사 댓글에는 “이번엔 스리랑카였지만 그 다음은 예멘이 될 것”, “다문화 정책 때문에 불바다 됐다” “외국인 근로자 줄이고 불법체류자 내쫓아라” 등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담긴 내용이 줄을 잇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외국인을 추방하라는 내용의 청원글이 연이어 올라오기도 했다. 한 청원자는 “외국인 근로자는 국가 경제에 도움 되지 않는다. 돈을 벌겠다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범죄를 저지르는 외국인 근로자를 자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범죄율 높다?…실제는 내국인의 절반 수준

이주 근로자, 난민 등 외국인을 혐오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범죄에 대한 우려’가 꼽힌다. 외국인이 많아지면 그만큼 내국인이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올해 초 제주도에 예멘 출신 난민들이 대거 입국하며 제노포비아가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제주도 난민을 두고 여론이 수용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범죄와 관련된 ‘가짜뉴스’가 만들어졌다. ‘종각역에서 이슬람인들이 집단 성폭행을 모의했다’, ‘이슬람에선 여자아이를 강간해도 된다’ 등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퍼지며 난민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하지만 외국인 범죄에 대한 공포는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하는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에 따르면 2011~2015년 인구 10만명당 외국인의 검거인원 수는 매년 내국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난해 외국인 범죄 건수는 오히려 전년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외국인 범죄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년 2만6663명 △2014년 3만684명 △2015년 3만8355명 △2016년 4만3764명으로 계속 증가하다가 2017년 3만6069명을 기록했다.

◇'외국인 범죄' 강조하는 언론…"사회 통합 가로막는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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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주민등록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은 2013년 3.1%에서 지난해 4.2%로 1.1%포인트(p) 증가했다. 100명 중 4명 이상이 외국인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 변화는 더딘 편이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전국 19~74세 성인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1.8%가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을 미국(13.7%), 독일(21.5%) 등 국민들에게 했을 때 응답 비율보다 상당히 높았다.

외국인 범죄가 발생했을 때 인종과 국적을 강조해 보도하는 언론도 내국인의 인식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언론은 이주 노동자 등 외국인 범죄가 발생하면 제목에 범인의 출신 국적이나 종교를 강조한다. 특정인의 범죄에서 ‘외국인’이 강조되면 제노포비아적 경향이 확산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인종주의적 보도 자체가 또 하나의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외국인이라는 특정 집단과 범죄를 연계시켜 보도하는 것은 폭력적”이라며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도 이 같은 보도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내무성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며 범죄와 조선인이라는 집단을 연결시켰다. 이것이 잔인한 대학살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 근로자를 부각한 이번 저유소 화재사건 보도는 보도 자체가 범죄 행위”라며 “언론이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만 준수해도 제노포비아로 인한 사회 분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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