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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풍등 화재 빈번한데 '선언적 금지'만...저유소 화재로 드러난 3가지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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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날리기, "허가제 도입해야"

제구실 못한 소화장비 기술 점검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도 갖춰야"

중앙일보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의 휘발유 탱크에 큰 불이 난 모습. 이 불은 17시간만에 진압됐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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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저유소 화재’는 스리랑카 노동자가 인근에서 날린 '풍등'의 작은 불씨에서 시작됐다. 작은 불씨는 17시간 꺼지지 않는 대형 불길이 됐고, 34억원 어치의 휘발유(260만ℓ)가 날아갔다. 인근 주민의 불안감과 정신적 피해까지 합산한다면 금액은 더 커진다. 전문가들은 풍등이 들불처럼 커지는 과정에서 3가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허술한 법체계-안전 인프라 미미-미흡한 감시체계가 그것이다.

①풍등 화재 빈번한대 원천금지 어려워

경찰에 따르면 풍등이 저유소 주변 잔디밭으로 떨어졌고, 잔디에 옮겨붙은 불이 대형 화재를 불렀다. 근로자가 날린 풍등은 화재 사고 전날인 6일 오후, 인근 초등학교에서 밤 행사의 일환으로 올린 것이었다. 풍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소원을 비는 도구로 많이 이용된다. 대만의 주요 관광지인 스펀은 ‘천등 날리기’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풍등으로 인한 화재는 적지 않다. 지난 1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의 철제 구조물에 풍등이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지역에서 열린 축제 때 풍등이 근처 상가 간판에 떨어져 불이 났다. 2014년 12월 말에는 강원 고성군의 한 콘도에 풍등이 날아와 잔디밭을 태웠고, 이듬해 1월 강원 동해시의 추암동 촛대바위 근처 암벽 건초에도 불이 났다. 이전에도 충남 논산시 등에서 풍등으로 인한 화재가 있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국내 소방기본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조항(12조)에는 소방당국이 풍등 등 소형 열기구를 날리는 행위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정된 법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는 소방당국이 날리지 말라고 명령을 한 후 이를 어겼을 때에만 벌금(200만원)을 내도록 돼 있다. 날리는 행위가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며 “풍등으로 인한 화재를 막기에는 허술하고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허가제 도입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②저유소 안전시설 미흡

저유소의 안전시설 미흡도 도마 위에 올랐다. 휘발유 440만L가 들어 있던 저유탱크에는 화재진화용 ‘폼액 소화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물과 소화약제가 섞인 거품을 분사해 불을 끄는 장비다. 하지만 화재 당시에는 내부 폭발로 탱크의 덮개 역할을 하는 ‘콘루프’가 솟구치면서 이 장비와 충돌해 제 기능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장비가 제대로 작동됐다면 큰 화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 폼액 장비를 탱크 하단에 설치해 폼액이 휘발유 상층부로 떠올라 화재를 진압하는 방식이나, 탱크 밖에 장비를 설치해 탱크 내부로 분사하는 방식도 현재 쓰이는 기술”이라며 “탱크를 설치할 때 이런 기술이 없었는지, 비용 문제 등으로 일부러 설치를 하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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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화재가 발생했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저유소에서 현장 관계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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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안전불감증, 실시간 모니터링 부재

위험 시설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부재’도 문제로 지적됐다. 경찰에 따르면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저유탱크 주변 잔디에 연기가 나기 시작해 폭발로 이어진 18분 동안 화재 사실을 알지 못했다. 탱크 외부에 감지 센서를 설치하지 않아 초동 대처가 늦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센서 설치 보다는 실시간 감시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영주 교수는 “옥외에 연기·열 감지 센서를 설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며 “인력을 더 투입해 저유시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무 사항이 아니라도 화재 예방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비용 발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잠재적 피해를 막아 그만큼의 액수를 벌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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