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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아침 햇발] 박근혜 뒤에 숨은 이재용과 신동빈 / 안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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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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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논설위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풀려났다. 희대의 정경유착 혐의로 수감됐던 재벌 총수는 모두 석방됐고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만 교도소에 남아 있다. 재판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며 모든 책임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떠넘겼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줬기 때문이다. 재판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덤터기를 씌운 셈이다.

지난 2월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뇌물 36억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나, 피고인이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수동적으로 범행에 이르렀다”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권력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이 부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 지원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뇌물의 대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일체 무시됐다. 아예 “피고인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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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도 지난 5일 “피고인이 면세점 특허를 다시 취득하기 위해 최순실의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준 것은 뇌물죄에 해당하지만, 대통령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의사 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책임을 엄히 묻기는 어렵다”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대통령에게 겁박을 당했다”는 신 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통한 신 부회장의 롯데그룹 지배력 강화가 뇌물의 대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일체 무시됐다. 아예 “피고인의 개인 이익이 아닌 롯데그룹 이익을 위해 행해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 두 사람은 처벌을 피하려고 박 전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첫 독대 때는 최순실씨의 존재를 몰랐고 한참 뒤에야 알게 됐으며,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은 승마 지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나마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내부 품의 과정을 거쳐 지출됐다”고 합리화해줬다. 신 회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요청받은 건 올림픽 선수 육성을 위한 것으로, 케이스포츠재단 뒤에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통령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공익적 활동에 사용되리라고 예상했다”고 합리화해줬다. 재벌이 어떤 곳인데 사용처도 모르면서 거액을 내놓는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런 어설픈 주장까지 받아들여줬다.

결국 재벌 총수들과 재판부의 합작으로 희대의 정경유착 사건은 ‘강요형 뇌물 사건’으로 둔갑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탁해 서로 부당한 이익을 주고받은 정경유착 범죄에서 재벌 총수들은 사라지고 전직 대통령만 남게 된 것이다. 정경유착에 더해 ‘판경유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지 신 회장 재판부는 “재벌 그룹이라는 이유로 보다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해서도, 반대로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도 안 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제 발이 저린’ 탓으로 보인다. 사법부가 재벌 총수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이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개탄이 더는 나오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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