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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JMT’ ‘좋페’ 세종대왕도 놀랄 요즘 한글…‘창조’ VS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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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황희정 기자]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한글 ‘신조어’…과학적 언어의 창조적 놀이 VS 새로운 세계 인식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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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곡’이라고 적힌 단어를 보면 세종대왕은 어떻게 생각할까. ‘명’의 초성을 ’ㄸ‘으로 표기한 창의성에 박수를 보낼까, 자신이 만든 한글의 정체성을 훼손한 오기라고 노여움을 보일까.

‘나랏말싸미~’로 시작해 ‘존맛탱’에 이르기까지 한글은 다채로운 변화를 겪었다. 제572돌 한글날을 맞는 동안 누군가는 이 같은 한글의 변형을 ‘신선한 창조적 아이디어’로, 또 어떤 이는 ‘사상을 저버린 훼손된 언어’로 해석한다.

◇ 주류로 떠오른 한글 줄임말…디지털 세대와 함께 '진화'

한글은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 등 첨단 기술 발달과 함께 변형이라는 단추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1999년 사람의 웃음소리를 문장이 아닌 ‘ㅋㅋㅋ’란 축약어로 쓰면서 시작된 한글의 ‘창조’ 또는 ‘파괴’는 ‘대박’, ‘초딩’, ‘얼짱’, ‘안습’ 등 단어 축약과 시쳇말을 앞세우며 주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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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몬에서 최근 20세 이상 성인남녀 2298명에게 ‘신조어’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대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신조어 1위에 ‘JMT’가 꼽혔다. /자료=알바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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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변화 속도는 디지털 속도와 맞물렸다. 디지털 발달로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고, 게임 안에서 ‘바쁜’ 활동에 맞춰 축약어가 발달하면서 이를 실생활에 고스란히 재사용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텍스트의 간결화를 요구하면서 축약어나 외계어 같은 신조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났다.

급기야 지난해 훈민정음을 빗댄 ‘야민정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한글 논쟁은 더욱 가속화했다. 한글 단어를 비슷한 다른 글자로 보이게 응용하거나 비슷한 한자어를 한글로 대체하거나 단어의 각도를 틀어 유사한 단어로 읽히게 하는 모든 글자 비틀기가 야민정음 안에서 유효하게 사용됐다. ‘방커머튽 으어뚠어뚠’은 ‘방귀대장 뿡뿡이’로, ‘머한민국’은 ‘대한민국’으로 해석되는 식이다.

◇'좋페' 'JMT' '법블래스유'…파괴적 창조인가 훼손된 언어인가

올해 등장한 유행어 역시 알 듯 모를 듯 줄임말이 대세다. ‘좋페’는 ‘좋아요’를 누르면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다는 뜻의 줄임말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즐겨 쓰는 유행어다. 인맥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안 자는 사람 좋페’, ‘심심한 사람 좋페’ 등으로 응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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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방영된 tvN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시즌 9'에서 '설혁수의 급식체 특강'은 한글 파괴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사진=방송 화면 캡처



구어적 단어인 ‘렬루’는 ‘진짜로’의 의미를 지니는데, ‘리얼’(real)이라는 영어 발음을 빠르게 한데서 시작됐다. 이를 줄여 ‘ㄹㄹ’이라고 쓰기도 한다.

‘톤+어그’의 합성어인 ‘톤그로’는 자기 톤에 맞지 않는 화장품을 써서 어색함을 뜻하는 말로, 주로 미용 분야에 쓰는 ‘전문용어’다. 게임 실력이 부족하거나 컨트롤을 잘 못하는 사람은 ‘발컨’(발로 하는 컨트롤), 대중문화나 트렌드를 잘 모르는 사람은 ‘문찐’이라고 호명한다.

‘갓 블레스 유’를 응용한 ‘법 블레스 유’는 법이 아니었다면 상대방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에게 화가 났지만 법 때문에 참는 경우를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법의 은총을 받았으니, 앞으로 주의하라는 의미다. 이런 문장에 익숙하지 않으면 소통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초성 중심의 줄임말, 한자와 한글, 외국어의 혼용, 한글 자체를 비트는 시도 모두 기성세대에겐 ‘안습’으로 다가가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와 유희를 내세운 신세대들의 ‘파창’(파괴적 창조)으로 읽힌다.

◇줄임말은 세계적 트렌드…사회상 정확히 꼬집는 냉철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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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편의점 프랜차이즈 CU는 초성만을 사용한 신조어로 만든 제품명을 상품에 적용해 화제에 올랐다. /사진=씨유순천오천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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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대세로 떠오르는 줄임말은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하다. 문자 텍스트의 경제성을 강조하면서 당시 사회 현상을 쉽고 빠르게 읽는 열쇠이기 때문.

청년 고용 저조 현상이 극심했던 2009년쯤엔 이를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속출했다. 20대에 퇴직한 백수가 많다는 의미의 ‘이퇴백’은 어떤 긴 문장보다 우울한 청년 실업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비정규직 또는 임시 공공 근로제에 머문 현실은 ‘인턴세대’라는 신조어로 표현됐고, 31세까지 취업하지 못하면 취업 길이 막힌다는 의미로 ‘삼일절’이 사용됐다.

줄임말이나 비튼 한글은 현재 SNS로 시작해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활용되고 다시 일상으로 안착한다.

알바몬이 최근 20세 이상 성인남녀 2298명에게 ‘신조어’를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20대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신조어 1위에 ‘JMT’가 꼽혔다. 너무 맛있다는 뜻의 ‘존맛탱’을 초성만 따서 영어 알파벳으로 병기한 것이다. 30, 40대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신조어 생성과 소멸 시기 빨라…"유희로 보자" VS "사상 좀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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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올라온 '급식체'의 정의. /사진=국립국어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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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한글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찬성론자들은 일시적 놀이문화의 유행이라고 본다. 실제 2005~2006년 신조어 938개 매체 출현 빈도를 추적 조사한 결과 국립국어원에 신조어로 등록된 이듬해부터 2015년까지 총 20회 이상·5개년간 연평균 1회 이상 매체에 사용된 단어는 250개(26.6%)에 불과했다. 신조어 10개 중 7개는 10년 안에 소멸한 셈이다.

서울대 박진호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언어가 지닌 사회적 함의에 주목하며 시대 변화에 따라가는 언어의 변형을 놀이 문자로 규정했다.

박 교수는 “야민정음의 경우 글자로 추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 유희로 볼 수 있다”며 “언어의 일탈이 사회 문화 현상을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언어의 비틈이 오로지 재미나 유희에 머물러 있다고 우려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언어가 사상을 규정하기에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로 새로운 세계를 그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유희로 쓰이는 언어는 사회적 약속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파괴되거나 왜곡된 언어를 진실로 알고 있는 젊은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다는 뜻을 ‘어의없다’로 알고 있거나 병에서 회복한다는 의미의 ‘낫다’를 ‘낳다’로 잘못 알고 있는 예가 그것이다.

‘창조냐 파괴냐’ 한글을 두고 되풀이되는 정답 없는 논쟁에서도 한글이 어떤 식으로든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황희정 기자 hhj26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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