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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카쇼기 실종에 중동 정세 파장…짙어지는 사우디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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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에르도안 “사우디, 결백 증명하라”

터키 당국, 실종된 카쇼기 옮긴 검은색 승합차 추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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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쇼기(59)의 실종 사건이 터키-사우디 관계 등 중동 정세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8일 카쇼기 실종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가 관여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터키에 머물던 카쇼기는 지난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실종됐다. 터키 쪽은 카쇼기가 영사관 내에서 살해돼 시신이 옮겨졌다고 주장하나, 사우디는 카쇼기가 영사관을 스스로 떠났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헝가리를 방문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영사관 직원들은 그가 영사관을 떠났다고 말한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만약 그가 떠났다면, 이를 영상으로 증명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이 사건 수사의 결과를 봐야 할 것”이라며 사우디의 관여를 증명할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블룸버그>와의 회견에서 사우디 정부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주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카쇼기가 영사관에 들어온 지 한 시간 정도 지나 떠났다며 터키 정부의 대응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터키의 압박에 이스탄불 영사관에 대한 조사를 수용했다고 터키 언론들이 9일 보도했다. 터키 수사 당국은 영사관 건물에 대한 수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직접 나서 자국 내에서 실종된 사우디 반체제 인사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 정부를 지목해 압박한 것은 양국 관계의 긴장을 반영한다. 터키와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서로를 경계하는 관계이나 공개적 다툼은 피해왔다. 하지만 올해 사우디가 주도한 아랍 수니파 국가들의 카타르 단교 사태에서 터키는 카타르를 지원해왔다.

터키는 또 최근 중동에서 사우디의 최대 가상 적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터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요구하는 앤드루 브런슨 목사의 석방을 거절해, 미국과의 관계가 최악에 처해 있다. 이에 터키는 시리아 내전 평화협상 등을 통해서 이란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있다.

카쇼기 실종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구축하려는 사우디 주도의 반이란 아랍 수니파 국가 연대 대 러시아-이란-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부-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반미 시아파 연대의 대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인 터키를 반미 및 친이란 쪽으로 더 기울게 할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곤혹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려하고 있다. 그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며 “(진상이) 밝혀지기를 희망한다. 현재로서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터키 쪽은 사우디의 관여를 입증할 정황을 언론 등을 통해 공개하며 압박하고 있다. 터키 당국은 카쇼기가 영사관 내에서 살해됐으며, 그 시신을 옮긴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승합차를 추적하고 있다고 터키 언론들이 보도했다. 카쇼기가 영사관에 들어가고 2시간 뒤에 검은색 승합차에 상자들이 실리는 것이 영사관 입구 보안카메라에 찍혔다는 것이다. 상자를 실은 이 승합차를 포함해 6대의 차량이 영사관을 나왔다는 것이다. 터키 수사 당국은 상자를 실은 검은색 승합차를 추적하고 있다.

터키 수사 당국은 이 상자에 카쇼기의 시신이 담겨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경찰은 사우디 쪽이 주장하는 것처럼 카쇼기가 스스로 영사관을 떠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보안카메라의 영상 자료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터키 당국은 지난주 15명의 사우디인들이 터키에 입국해 이 사건에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일 두 대의 사우디 비행기가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고, 이날 카쇼기가 실종된 지 몇 시간 만에 터키를 떠났다는 것이다.

카쇼기가 납치돼 모처에서 붙잡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카쇼기의 친구인 투람 키스락치는 <가디언>에, 카쇼기가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한테서 귀국해 자신의 고문이 돼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하기 전에 카쇼기는 자신과 연락이 끊기면 터키 당국에 신고하라고 동거인인 하티스 센기즈에게 말했다. 카쇼기는 동거중인 터키 여인인 센기즈와 재혼하기 위해 본처와의 이혼 절차를 밟으려고 영사관을 방문했다.

사우디 엘리트 계층의 일원인 카쇼기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워싱턴 포스트>에 사우디 체제를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해왔다. 애초 그는 사우디에서 정부 고문 등으로 재직한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체포된 뒤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자, 그가 재직하던 신문 <알하야트>에 실으려는 칼럼이 취소되고 트위터도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는 미국으로 출국한 뒤 사우디 왕가를 비판하는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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