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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언어도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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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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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클립아트코리아[중부매일 중부시론 표언복] JTBC의 보도부문 총괄 사장직을 맡고 있는 손석희 앵커는 '시사저널'이 실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조사에서 지난 2005년부터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할 만큼 이름값이 높은 언론인이다. 그가 진행하는'JTBC 뉴스룸'은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쟁관계에 있는 공중파 방송의 높은 자리에 있는 한 지인은 최근 사석에서 그를 우리나라 최고의 방송인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방송에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 대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쓴다 하여 입질에 오른 적이 있다. 그가 뉴스의 대상이 된 사람을 인터뷰하고 끝낼 때 쓰는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은 '감사합니다'의 낮춤말로서, 방송언어로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버릇이 없거나 예의에 어긋난다는 뜻일 텐데, 과연 그럴까? 이런 시비에 대해 당사자인 손석희 앵커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가 굳이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만한 정도의 이력이나 경륜을 가지고 있는 방송인이라면 충분히 생각하고 가려 쓴 말일 것이라는 점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맙습니다'가 바람직스런 인사말이다. 그렇다고 '감사합니다'가 잘못된 표현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중국어로 '깐시에'(感謝)라 쓰고 일본어로는 '칸샤시마스'感謝します)라고 쓰는 외래어보다는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을 쓰는 게 더 옳다는 말이다. 삼국시대에 벌써 국호, 왕명, 관직명 등의 고유명사와 주요 개념어들이 한자어 일색으로 표기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이후에는 일상어까지 널리 한자어로 바뀌어 토박이말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중국에 대한 사대의식이 깊게 뿌리내린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고유의 말과 글을 천하게 여기고 한자어를 귀하게 여기기까지 하여 토박이말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을 만큼 부끄러운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한자어에 대한 사대의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우리말의 발전을 크게 가로막고 있다. 일제의 지배는 우리말을 또 한 번 크게 굽고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일본어 또는 일본식 외래어가 밀려들면서 토박이말이 설 자리를 잃고 빠르게 사라지거나 쪼그라들게 한 것이다. 그 잔재는 지금도 '숙주새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뻐꾸기'처럼 우리말 가운데 남아 행세를 하고 있다. '결혼'이나'출산'은 우리에게는 없던 일본식 한자어지만 우리식 한자어 '혼인'과'해산'을 밀어내고 우리말 행세를 하고 있다. '채소'는'야채'에게 치이고,'잔치'는'축제'에 밀려났다. 더더욱 부끄러운 사실은 이같은 일본어의 탁란이 해방 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쓰이는 '택배'라는 말.'타꾸바이(たくはい. 宅配)'라는 일본식 한자어다. 1990년대 초 이 땅에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국립국어원이 '집 배달''문 앞 배달'로 순화했지만 낯설기만 하다. 언어는 생명이다. 태어나 번성하다 쇠퇴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랑하여 아끼고 보호하면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들과의 경쟁과 싸움 속에 산다. 산다는 건 곧 싸움이고, 생명이란 바로 싸움에서 이긴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잡초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결실을 보는 작물이나, 천적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동물처럼 언어도 다른 언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 공들여 돌보지 않는 밭에 잡초가 무성하듯, 그러다 정작 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아끼고 돌보지 않는 언어는 외국어나 외래어 그늘에 묻혀 힘을 쓰지 못하다 사라지고 만다. 지금 우리 언어가 이런 위기 앞에 놓여 있다. 지난 추석 명절을 즈음해 거리에는 온통 정치인들이 내건 펼침막들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추석 명절 되십시오'. 사람더러 명절이 되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어법인가. 우리 언어는 보호 주체인 우리의 이같은 무지와 무관심 속에 외국어와 외래어의 홍수에 밀려 아주 빠르게 세력을 잃어 사라져 가고 있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우리가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자랑거리다. 우리가 고유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지닌 민족이며 주체적 독립국가의 국민임을 확인시켜주는 신표와도 같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아직도 한자어의 위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제어의 찌꺼기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터에 여전히 외국어와 외래어의 홍수 앞에 방치된 우리 언어의 운명이 걱정스럽다. 9일은 한글 창제 572돌을 맞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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