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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한글, 잠자고 있는 영웅"…45년 '한글 외길' 독일인 후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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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음으로 400억자 조합 가능…컴퓨터 입력 체계 바꿔야"

뉴스1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 대학 명예교수가 5일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한글은 잠자고 있는 영웅과도 같습니다."

한글날을 앞둔 지난 5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근처에서 만난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 대학 명예교수(68)는 여느 한국인보다도 한글에 대한 애착이 깊어 보였다. 올해로 46년째 한글 연구에만 매진해 온 후베 교수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며 웃어보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위생병으로 참가했다가 우연히 한국과 한국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후베 교수는 이후 46년째 한국어 연구의 외길을 걸었다. 그는 1974년 처음 한국땅을 밟았고, 1989년부터는 본 대학교에서 한국어 번역학과 교수를 지냈다. 이후 1995년부터 20년간은 이 학과의 학과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서울대 독어교육과 객원교수로 재직했던 후베 교수는 올해는 다시 한국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준비하고 있는 논문은 '훈민정음과 컴퓨터 정보기술'에 관한 것이다. 이미 2010년에 독일어로 출판됐던 논문의 한국어판으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후베 교수는 "한글을 일상생활에서 쓸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컴퓨터 내부에서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컴퓨터에서의 한글은 자음, 모음이 따로 정의되지 않고, 일본어나 중국어처럼 음절로 등록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후베 교수에 따르면 컴퓨터에서 구현되는 한글 음절은 총 1만1172글자. 이 글자가 제 각기 따로 코딩돼 구현되는 방식이다.

후베 교수는 "언뜻 보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1만자가 넘는 글자를 각각 코딩하는 것은 엄청난 기술적인 방법이 필요한 일"이라면서 "언어를 소리로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정보기술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 자음, 모음으로 만들 수 있는 '음절다발'은 무려 400억개에 이른다. 한 사람이 100다발씩 매일 써도 무려 150만년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그러나 현재로서는 컴퓨터에서 이 '음절다발'을 모두 구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음절은 1만1172글자에 대부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후베 교수는 언어의 확장성을 고려했을 때 1만1172글자의 '제약'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베 교수는 "한글이 창제된 지 550년 동안 수없이 언어가 바뀌고 수정됐다. 앞으로 500년이 지났을 땐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 "컴퓨터상에서 한글을 마음대로 구현하고 표현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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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 대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한글 연구 논문을 살펴보고 있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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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은 자음, 모음의 순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후베 교수는 "현재의 자·모음 순서는 최초 훈민정음이 창제됐을 당시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최초의 자·모음 순서는 음양오행, 자연의 세계관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 기준으로 자·모음을 따로 등록하는 작업을 정립하면 지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베 교수의 한글사랑, 세종대왕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한글을 일컬어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언어이자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고 정의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글은 균형과 평화의 역할을 해왔다. 최초에 만들어진 계기가 백성들도 동등한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혼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상징과 같았고, 한글로 된 문학 등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단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남·북한을 하나로 만드는 것 또한 한글이다. 분단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언어도 각기 다르게 발전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통합하는 것 역시 한글이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후베 교수는 최근 젊은 층에서 이뤄지고 있는 '줄임말', '신조어' 등 '한글파괴 우려'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언어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달하게 돼 있다. 신조어들이 얼마나 길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언어의 발전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글'에 대한 애착을 잃지 않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언어파괴' 우려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후베 교수의 생각이다.

"한글은 여전히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보배'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를 꼭 지켜나가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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