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3.7%로 49년만에 최저… 소비자물가는 2%대 수준 유지
경제학 통념 깬 안정적 호황
미국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는 미국의 9월 소비자신뢰지수가 138.4를 기록해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 2분기 연율 환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년 만의 최고치인 4.2%를 기록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경제 지표들을 보면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표현할 정도다. 미국 경제 수장들도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넘버 3'인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5일 미국 경제에 대해 "골디락스(Goldilocks) 경제"라고 평가했다. 골디락스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절한 온기(溫氣)를 이어가는 경제 상황을 표현하는 용어로,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다.
골디락스는 원래 영국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의 주인공 금발머리 아이 이름이다. 동화에서 골디락스는 숲에 놀러 갔다 곰의 집에 들어간다. 그 집에는 세 그릇의 수프가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아빠 곰의 뜨거운 수프라 혀를 델 지경이고, 하나는 엄마 곰의 차가운 수프라 맛이 없었다. 골디락스는 미지근하면서 감칠맛 있는 아기 곰의 수프를 다 먹어치웠다. 1992년 이 동화에서 차용해 투자은행 살로먼 브러더스의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슐만이 '골디락스 경제'라는 책을 쓰면서 이제는 경제 용어로 더 유명하다.
뜨거운 경제에선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구인난으로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도 함께 오른다. 그래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가계는 저축을 줄이고 기업은 생산적인 투자를 주저한다. 반면 차가운 경제에선 일자리가 부족해 구직난으로 임금이 떨어지면서 물가도 주춤한다.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하는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덩달아 생산을 줄인다.
미국은 이 두 상황을 행복하게 피해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조차 지난 2일 "경제지표를 분석하기 시작한 이후로 드문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경제가 이례적으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모두 낮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업률이 49년 만의 최저 수준인데, 물가상승률도 2%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경제 상황을 언급한 말이다.
최근 미국의 경제 상황은 경제학의 오랜 통념마저 깬다. 영국 경제학자 필립스가 1950년대 정립해 경제학 교과서에 수록돼 온 '필립스 곡선' 이론을 거스르고 있다. '필립스 곡선'에선 실업률과 물가는 거꾸로 움직인다. 다시 말해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 인상과 함께 물가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지금 미국 경제는 그렇지 않다. 실업률도 낮고 물가도 2%대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도 왜 그런지 의견이 분분하다.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는 파트타임 근로자 증가, 연봉을 많이 받던 베이비부머의 퇴장, 경제의 글로벌화로 값싼 소비재가 수입돼 들어오면서 임금도 오르지 않고, 물가도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는 해석이 많다.
골디락스가 처음 경제 용어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까지 일었던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신(新)경제' 때부터다. 당시 인터넷을 위시한 각종 신기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생산성을 높였다. 미국 경제에 골디락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하지만 닷컴버블은 순식간에 터졌고 이를 치유하려고 내린 금리가 부동산 버블을 키웠다. 미국 경제는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따라서 '필립스 곡선'을 거스르는 지금의 미국 골디락스 경제 상황을 무조건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다음 금융 위기가 찾아온다면 2020년이 될 것이며 미국과 신흥국의 증시가 각각 약 20%, 48% 하락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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