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철 여행작가 |
며칠 전 '서울 세계 불꽃축제'가 열렸다. 불꽃이 수놓은 가을밤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100만명이 집결한 지상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명당자리 한 뼘을 놓고 다투는 '부동산꾼'부터 술 먹고 고성방가하는 '주정뱅이'까지. 최악은 '장승'이었다. 불꽃이 터지기 시작하면 저 혼자 잘 보겠다며 벌떡 일어나 시야를 막는 이들. 전염병이라도 되는지 잘 앉아 있던 이들도 허겁지겁 따라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시험에 들었다. 순간 오스트리아 한 미술관에서 만난 할머니의 '고함'이 귓전을 때렸다. 긴 회랑을 따라 거닐던 중 한 작품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는데, 'NO PHOTO(사진 금지)'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관리인은 보이지 않는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명뿐. '나 하나쯤이야'란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검지를 치켜들었다. 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만 'NO'라고 했을 뿐인데, 마치 커다란 고함인 듯 강렬하게 골을 때렸다. 부끄러움에 심장이 뛰고 카메라 잡은 손엔 식은땀이 흘렀다.
불꽃이 보이지 않자 엉덩이를 떼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앉읍시다!'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공허한 외침일 거라 생각했는데, 변화가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이들이 이구동성 일어선 이들에게 규칙을 지키자고 요구했다. 한둘이 앉기 시작하더니 꼿꼿했던 장승들이 도미노처럼 스러져갔다. 기적처럼 시야가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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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쯤이야'란 생각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순식간에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하지만 백신은 있다. 용기 내 말하는 것. 룰브레이커를 만나면 큰 소리로 외치자. NO!
[오재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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