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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일사일언] 기적의 도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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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오재철 여행작가


며칠 전 '서울 세계 불꽃축제'가 열렸다. 불꽃이 수놓은 가을밤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100만명이 집결한 지상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명당자리 한 뼘을 놓고 다투는 '부동산꾼'부터 술 먹고 고성방가하는 '주정뱅이'까지. 최악은 '장승'이었다. 불꽃이 터지기 시작하면 저 혼자 잘 보겠다며 벌떡 일어나 시야를 막는 이들. 전염병이라도 되는지 잘 앉아 있던 이들도 허겁지겁 따라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시험에 들었다. 순간 오스트리아 한 미술관에서 만난 할머니의 '고함'이 귓전을 때렸다. 긴 회랑을 따라 거닐던 중 한 작품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는데, 'NO PHOTO(사진 금지)'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관리인은 보이지 않는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명뿐. '나 하나쯤이야'란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검지를 치켜들었다. 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만 'NO'라고 했을 뿐인데, 마치 커다란 고함인 듯 강렬하게 골을 때렸다. 부끄러움에 심장이 뛰고 카메라 잡은 손엔 식은땀이 흘렀다.

불꽃이 보이지 않자 엉덩이를 떼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앉읍시다!'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공허한 외침일 거라 생각했는데, 변화가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이들이 이구동성 일어선 이들에게 규칙을 지키자고 요구했다. 한둘이 앉기 시작하더니 꼿꼿했던 장승들이 도미노처럼 스러져갔다. 기적처럼 시야가 트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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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쯤이야'란 생각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순식간에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하지만 백신은 있다. 용기 내 말하는 것. 룰브레이커를 만나면 큰 소리로 외치자. NO!

[오재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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