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따로 고를 필요 없이 요리사가 내미는 음식 즐겨
김 셰프는 "밥 먹을 때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라지만 그만큼 쉽게 먹기 힘든 것을 갈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 하이엔드의 욕구를 읽고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쿤쏨차이’에서 내놓는 ‘태국요리 오마카세’요리 중 하나인 태국식 소갈비국밥.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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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쏨차이’의 김남성 셰프.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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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식가들 사이에선 '뭘 먹을까'만큼이나 '누가 만든 것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게 화두다. 요리사나 바리스타, 바텐더가 알아서 접시를 내미는 소위 '오마카세(おまかせ)' 서비스를 하는 곳이 많아졌다. 일본어로 '믿고 맡긴다'란 뜻의 이 말은 그동안은 일식당에서 주로 쓰였다. 일식집 주방장이 알아서 음식을 내어주는 것을 가리켰던 것.
그러나 최근엔 그 뜻이 한층 넓어졌다. 일식뿐 아니라 고깃집, 태국요리집, 튀김요리집에서도 '오마카세 서비스'가 인기다. 최근엔 커피와 디저트, 칵테일과 음료 코스까지도 오마카세란 단어를 붙여 부른다.
믿고 맡기는 미식 큐레이션
서울 서초동 태국 음식점 '쿤쏨차이'엔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없다. 태국 음식만 16년을 해온 김남성(39) 셰프는 "아무리 다채롭게 메뉴를 꾸며도 사람들은 사진을 보면서 결국 똠얌꿍과 팟타이를 고르더라. 늘 먹는 음식 말고도 맛있는 요리가 정말 많은데 이를 알려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진을 빼기로 했다"고 했다. 대신 그는 음식 7가지 또는 9가지를 알아서 내주는 '태국요리 오마카세' 서비스를 시작했다. 100% 예약제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다. "전날 술을 많이 먹었다"는 사람에겐 각종 국물 요리와 국수를 내어주고, "고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겐 국밥부터 사태찜 요리까지 구성해 내미는 식이다.
①서울 압구정동‘구전동화’의 오마카세 메뉴 중 하나인‘가츠 샌드’. 소고기 겉면만 살짝 튀겨 빵 사이에 끼웠다. ②‘모퉁이우 라이프’에서 내놓는 ‘셰프 맘대로’코스 요리 일부. 트러플을 얹은 랍스터다. ③‘빈브라더스’가 계절별로 준비하는‘커피 오마카세’엔 다양한 커피와 디저트가 포함됐다. /김지호 기자·김호윤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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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한우 고깃집은 요즘 오마카세의 격전지다. 서울 압구정동 '구전동화' 박준형 셰프도 14년가량 일식을 하다 올해부터 새롭게 한우 오마카세를 시작했다. "질 좋은 한우 살치살은 오묘하게 참치뱃살 같은 맛이 나요. 여기에 성게알이나 트러플을 함께 얹어내면 색달라지는데 손님들이 이런 요리를 특히 좋아해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요리를 맘껏 내놓을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서울 한남동 일본식 선술집 '카미소리'는 각종 꼬치와 튀김 안주를 오마카세로 내놓고, 커피 전문점 '빈브라더스'는 강남점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커피 오마카세'를 한다. 현재 다음 오마카세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1만~2만원 돈을 내고 정해진 기간에 미리 예약하면 숙련된 바리스타가 각종 식재료와 커피 맛의 궁합을 따져가며 5~6가지 디저트를 내어준다.
소식과 탐식 사이
혼밥족·혼술족은 오마카세 열풍을 키운 또 다른 주역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미식가로 유명한 의사 황현민(48)씨는 "혼자 또는 둘이서만 밥을 먹으면 요리를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주문할 수가 없어서 오마카세 서비스를 하는 곳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혼자서도 "양은 적게 맛은 길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에 있는 각종 오마카세 요리를 한번씩 맛봤다는 '우가' 허세병 대표는 "소식의 시대라지만 탐식의 욕구는 오히려 커졌다. 이 양쪽 요구를 모두 충족하는 게 오마카세 서비스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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