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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취재일기] 31.2년의 주름과 노벨과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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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프랜시스 아널드·조지 스미스·그레고리 P. 윈터.’

지난 3일(현지시각) 스웨덴 왕립아카데미에서 발표된 노벨 화학상 수상자 발표를 끝으로, 올해 총 8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새로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1901년 노벨과학상 시상이 시작된 후 수상자 수는 총 607명으로 늘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발표에 뒤이어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와 수상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나갔지만, 취재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기자들은 말보다도 수상자의 얼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주름으로 가득한 세 사람의 사진에서는 그간 연구로 보낸 세월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 주름의 평균 나이는 31.2년이다. 한국연구재단(NRF)이 최근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논문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들을 노벨상 반열에 올려놓은 핵심 논문을 완성하는 데 17.1년, 논문 발표 후 노벨상 수상까지 연구 기간은 평균 14.1년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과학의 진보는 노벨상 수상 후 117년간 약 1만8938년의 시간을 투입한 연구자들의 땀으로 설명될 수 있다.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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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언제쯤 노벨과학상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한국 과학자들은 두 단어로 이를 설명했다. 바로 ‘시간과 네트워크’다. 과학자들은 한국이 노벨과학상에 다다르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선양국 한양대학교 정보통신소재연구센터장은 논문 피인용 지수 기준으로 노벨과학상에 머금가는 연구성과를 이뤄낸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일본의 경우 한 분야 연구를 20~30년간 꾸준히 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며 “깊이 있는 연구를 오래 하면, 해당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발견을 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100년이 넘는 과학역사를 가진 일본의 ‘시간’과 한 분야를 지속해서 파고는 연구문화가 차이가 됐다는 의미다. 일본은 올해까지 총 23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여기에 국제공동연구를 비롯한 연구네트워크 역시 앞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연구자들은 “전 세계 300명의 과학자들의 추천으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만큼, 연구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1989년 기초과학 진흥 원년을 선포하며 90년대 들어 비로소 기초과학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의 질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31.2년의 주름을 쌓아갈 오늘의 한국 과학자들에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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