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무조건 걷고 보자” 세금 곳간 두둑 국민 지갑은 텅텅 소득성장 웬말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1조5000억원.

정부가 올해 7월까지 지난해 대비 더 걷은 세금이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내놓은 ‘월간 재정동향 9월호’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190조2000억원의 국세가 걷혔다. 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을 268조2000억원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7월까지 이미 예상 세수의 70.9%를 채웠다. 전문가들은 올해 국세 수입이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어서리라 예상한다. 5년 전과 비교해 100조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경기가 좋아 국민소득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져 나라 곳간이 풍성해졌다면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그러나 세수 증가가 호(好)경기 덕분이 아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법인세 증가는 세법 개정에 따른 세액공제 축소와 법인세율 인상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가계빚은 늘어가는데 세금만 많아져 제대로 소비를 못한다는 말도 나온다. 문재인정부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매경이코노미

트럼프 첫 정책 ‘감세’…韓 못 올려 안달

美 법인세 감면 이후 유례없는 호황 누리지만 한국만 세율 인상 역주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감세였다. 지난해 12월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감면을 골자로 한 세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세제 개편안 핵심은 법인세율 인하. 미국이 법인세율을 내린 것은 1986년 이래 31년 만이었고 역시 31년 만의 최대 폭 감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하향 조정한 것마저 성에 안 찼는지 2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역시 39.6%에서 37%로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감세정책 덕분에 미국은 사상 유례가 드문 호황과 일자리 풍년을 누리고 있다. 감세 효과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논란거리다. 하지만 하향곡선을 그리던 미국 경제를 반등시킨 핵심 요인이 감세였다는 점을 부인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세금으로 아우성이다. 기업은 가뜩이나 경영 환경이 어려운데 세금이 버겁다고 하소연한다. 국민은 세금은 물론 준조세 성격의 국민연금과 각종 보험료를 내느라 쓸 돈이 없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 고소득자들은 정부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반면 정부 곳간은 쌓여만 간다. 올 1~7월 세수는 1년 전보다 21조5000억원 더 걷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190조2000억원의 국세가 걷혔다. 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을 268조2000억원으로 예측했다. 7월까지 이미 예상 세수 70.9%를 채운 셈이다. 지난해 7월까지 세수 진도율(67.2%)과 비교해 3.7%포인트 높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세수는 300조원을 넘어선다. 그야말로 유례 드문 ‘세수 호황’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업이 내는 법인세수는 이 기간 42조5000억원이 걷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조7000억원 늘어났다. 소득세수와 부가가치세도 각각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조9000억원, 2조7000억원 더 걷혔다. 세수 확대는 올해뿐 아니다. 지난해 23조1000억원, 2016년에는 19조6000억원의 세금이 예상보다 더 들어왔다.

세수가 늘어나며 조세부담률이 확 뛰었다. 조세부담률은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총 조세 수입 비율을 뜻한다. 올해 조세부담률이 20.28%로 역대 처음으로 2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총 조세 수입 전망치 365조원과 경상 GDP 전망치 1799조6144억원을 계산해 나온 수치다.

조세부담률은 지난 1990년 16.6%에서 지난 2007년 19.6%까지 올랐다가 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정부 감세정책 영향으로 지난 2010년에 17.9%까지 떨어졌다.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 올해 20%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OECD 회원국 평균 25%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지만 상승 속도는 빠르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 1~7월 21조5천억 더 걷혀

종부세, 올해는 4100억 수준

내년엔 2조8000억 사상 최고 예상

경기가 좋아 국민소득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져 나라 곳간이 풍성해졌다면 이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그러나 조세부담률을 보면 기업과 국민이 느끼는 ‘세금 피로도’는 결코 낮지 않다.

반도체 호황으로 실적이 좋아져 법인세를 왕창 낸 기업도 있으나 대부분 기업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국내 기업이 다 잘해서 법인세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세액공제 축소와 법인세율 인상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잘 굴러가 세수가 많이 걷혔다고 쉽게 오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한 중견기업 창업자는 “최고세율 기준 25%의 법인세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 규제 등 버티기가 쉽지 않다. 증여세를 내고 자식에게 물려줄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세금을 내고 나면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식도 힘들게 한국에서 사업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기업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한국납세자연맹이 OECD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재산 관련 세수는 48조6000억원으로 전체 세수의 12%를 차지했다. OECD 평균(6%)의 2배로 OECD 국가 가운데 2위다.

돈을 벌어도 세금과 보험료 등을 내느라 써보지 못한 채 나가는 돈이 상당하다. 올해 2·4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 월평균 비소비지출액은 94만2100원이다(통계청 자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었다. 전해 증가율은 2.7%에 불과했다. 증가 폭이 6배 넘게 불어난 셈이다.

매경이코노미

전체 월평균 소득(453만1000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7%에 달한다. 전분기에 이어 이번에도 2003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2·4분기 기준 20%를 넘어섰다. 비소비지출은 세금·연금·사회보험료·이자비용 등으로 가계 입장에서는 ‘줄일 수 없는 지출’이다. 비소비지출이 전체 소득보다 많이 늘면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처분가능소득)은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 올 2·4분기 가구당 월평균 명목소득 증가율은 4.2%로 비소비지출 증가율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비소비지출 중에서도 근로소득세·재산세 등 가계에 직접 부과하는 세금이 많이 늘었다. 가구당 월평균 15만6300원을 내 전년 동기 대비 23% 급증했다.

연금과 사회보험료 같은 준조세가 각각 10%, 14% 늘었다. 정부가 사회보험 보장성을 계속 강화하는 추세라 이에 따른 보험료 인상이 현실화하면 향후 보험료로 떼는 돈은 더 늘어난다. ‘소득 증대 → 소비 증가 → 경기 활성화’라는 소득주도성장의 고리가 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고소득자 불안감도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방배동에 사는 개인사업자 김수진 씨는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 중이다. 그는 최근 ‘고자(고소득 자영업자)’로 분류돼 강도 높은 세무조사와 함께 수십억원대 세금을 추징당할 처지에 놓였다. 김 씨는 “주말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많이 고용해야 하는 업종인데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을 맞추느라 힘들었다. 3~4년 전 자료를 들춰내며 세금을 포탈했다고 하는데 성실하게 납부했다고 자부해온 입장에서 억울하고 사업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강남권에서는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종부세는 올해 4000억원대로 크지 않다. 그러나 내년에는 큰 폭 상향돼 2조8000억원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부동산 전문 PB는 “정부가 부동산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다기보다 세수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공시지가를 높이면 세금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이 따라 오르는데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목표 경제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세수 확대에만 열을 올려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재정이 풍부할 때 투자와 고용, 소비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시켜줄 감세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기업 투자의 관건인 법인세율부터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인세는 최근 몇 년간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모두 감세를 추진해왔으나 한국만 역주행했다. 한국 주요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언급돼왔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정부가 추진 중인 재정지출 확대는 복지 등 대개 일회성, 소비성 지출을 늘리는 방안이라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반면 감세는 기업 투자로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학자인 아서 래퍼는 한 나라의 세율이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높을 때 오히려 세율을 낮춘다고 주장했다. 세율을 높일 때 조세 수입이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조세 수입이 떨어지는 ‘역U자형’ 그래프를 그린다. 이를 ‘래퍼 곡선’이라 부른다. 오히려 세율을 낮추고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이 경제 주체 창의력을 높여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회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배준희·강승태·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7호 (2018.10.03~10.09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