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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TAPAS] 주유소에서 바베큐?…자영업에도 ‘복합매장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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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 TAPAS=나은정 기자]

“뭉쳐야 산다.”

하나만 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고객의 지갑을 여는 일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쇼핑을 하며 휴식도 취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외식도 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의 소비심리 분석가 파코 언더힐이 “고객이 매장에서 소비하는 비용은 매장에 머무는 시간과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밝힌 것처럼, 한 공간 안에 다양한 상품군을 구비한다든가 타 업종과 결합해 소비자들이 최대한 오래 매장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나 국내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복합 매장이나 복합 쇼핑몰에 사활을 걸었다. 2016년 신세계 그룹이 축구장 70개 규모의 ‘스타필드’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복합 매장 바람이 최근 경기 침체로 폐업이 속출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은 평균 79.3%. 한 해에 가게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8곳이 문을 닫을만큼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로 살아남기란 그만큼 살벌하지만, 업종간 경계를 허물고 합치는 컬래버레이션(협업)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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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 넣고 손세차, 옥상에선 함께 BBQ를

인천 연수구의 한 주유소. 이곳은 주유소가 자동차에 기름‘만’ 넣는 곳이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겉보기엔 여느 주유소와 다를 바 없지만, 안쪽엔 차량 25대가 동시에 셀프세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 커피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 세련된 카페와 BBQ가 가능한 옥상 테라스, 책을 읽거나 조용히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휴게공간까지 갖췄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다.

편의점이나 카페 등이 입점한 주유소는 그닥 특별할 게 없지만, 주유-세차-식사/커피-모임을 한 곳에서 가능케 한 이곳은 기름냄새 나는 주유소가 아닌 커피냄새 나는 쉼터가 됐다. 오픈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셀프세차 동호인들을 필두로 하루 평균 70~100명의 고객이 이 ‘공간’을 즐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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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 대표가 기존 주유소와 다른 콘셉트를 추구한 것도 주유업체들의 저가 출혈 경쟁으로부터 벗어나 머물다 갈 수 있는, 또 찾아오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일반 주유소를 운영했을 땐 가격 경쟁이 심해서 100만원 팔면 5만원밖에 안 남았어요. 다른 수익처가 필요했죠. 주유, 세차, 휴식, 만남을 위해 이리저리 매장을 찾아 헤매지 않고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차에 애착을 갖는 젊은 오너들이 늘면서 셀프세차가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로 자리잡자 수익도 껑충 뛰었다.

“우리는 주유소가 미끼예요. 기름 넣고 셀프로 세차도 해보고, 커피 한 잔 하면서 모임 갖는 분들이 늘어나니까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서 매출로 이어졌어요. SNS에 공유된 카페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가 주유나 세차를 하는 손님도 많아요.”

나홀로 혹은 여럿이 와도 즐길 수 있는 복합 매장으로 바꾼 뒤 하루 주유소 매출만 5000만원 이상. 기존에 주유소만 운영했을 때보다 2.5배가량 늘었다. 김 대표는 이곳에 반려동물 셀프 목욕숍도 연말까지 추가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 머리 자르며 위스키 한 잔, 발끝까지 달라진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바버숍. 이곳은 일반 미용실이나 빙글빙글 싸인볼이 돌아가는 이발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바버숍이라는 곳이 단순히 헤어스타일만 바꿔주는 곳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곳은 남성패션 매장과 협업을 통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성들이 전문적인 ‘그루밍’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2013년 오픈할 때만 해도 이렇듯 총체적인 서비스가 가능하진 않았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건물 1층에 가게를 운영하면서 2층은 남성 악세서리를 판매하며 고객의 휴게 공간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다 비슷한 느낌의 바버숍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타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선택한 것이 패션이었다. 전문 테일러 숍을 입점시켜 스타일 변신을 위한 남성들의 공간으로 시너지를 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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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섭 대리는 “바버숍 컬쳐를 나누려 분위기 있는 음악에 위스키, 구두 케어 서비스도 제공하지만 1시간 머리자르고 나면 사실 할 게 없다”며 “단순히 이발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들이 오래 머무르며 스타일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커트 한 번에 7만7000원이라는 불편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주중엔 하루 평균 15~20명, 주말엔 30~40명의 고객이 방문한다. 테일러 숍 입점 후엔 매출도 약 8% 늘었다. 2015년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내 남성 패션 브랜드 숍에 세계 최초로 ‘숍인숍’ 형태로 문을 열었는데, 바버숍을 포함한 브랜드 매장의 매출이 해마다 10%씩 증가했다.

■ 제품보다 ‘공간’ 경험…해외서도 뭉치고 합쳐

미국ㆍ일본 등 해외에서도 대기업과 글로벌 체인들이 먼저 복합 매장과 쇼핑몰에 눈을 돌렸고, 점차 소매업체로까지 그 바람이 번졌다. ‘반스앤노블’은 미국에서 지난 1993년 1호점을 오픈했을 때부터 서점과 카페를 결합해 고객에게 ‘여유’를 팔며 입지를 다졌다. ‘이케아’ 역시 매장 내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연간 6억5000만 명의 고객을 끌어모았다.

일본의 서점 체인인 ‘쓰타야’는 책과 함께 문화를 파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서점 겸 CD 대여점으로 시작한 쓰타야는 인테리어 용품, 가전, 가구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해 고객이 한곳에서 라이프스타일에 관련한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심지어 올해 1월엔 샤워도 하고 누워서 쉴 수 있는 ‘북 아파트’까지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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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쓰타야 북아파트먼트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쓰타야 북아파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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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당시 작은 생활 잡화 브랜드에 불과했던 ‘무인양품’은 현재 문구류부터 의류, 가구, 식료품까지 업종의 경계를 허물고 거의 모든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며 일본의 국민 브랜드로 거듭났다. 일부에선 주택도 팔고 식당까지 운영한다. 무인양품은 제품도 제품이지만, 콘셉트 있는 공간에 집중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를 오래 머물게 하면 자연스럽게 지갑도 열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에 의해 주도된 복합 쇼핑몰이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각광받으며 몸집을 불리는 요즘. 김정순 대표에 따르면 57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에게도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분명 있어 보인다.

“하나만 해도 잘 하기 어렵죠. 그런데 싼 가격이나 좋은 서비스로는 더이상 성공하기 힘드니까요. 다른 덴 없는 우리만의 차별점을 만드는 거죠. 가족들이 와도 즐길 수 있는, 모임하기 좋은 주유소라니, 특이하잖아요. 너도 나도 바쁜 시대에 여기서 다 하고 쉬고 가시라는 거예요. 손님들도 그게 좋아서 다시 찾아주시죠. 심지어 해외 방송에서도.”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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