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개人주의]너굴맨은 행복하지 않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편집자주] 100여년 전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함과 그 도덕적 진보는 동물에 대한 처우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이유로, 혹은 맛있는 음식 재료라는 이유로 동물의 권리는 무시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할 때 우리도 새롭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주 목요일, 사랑스러운 반려견의 일상부터 맥주와 콤비를 이뤄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닭의 씁쓸한 삶까지 여태 알지 못했던 우리 주변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유승목의 개人주의][동물권TALK]귀여운 동물로 인기 끌고 있는 야생동물카페…실상은 동물권·공중보건 사각지대

머니투데이

라쿤카페에서 사육되는 라쿤과 신기한듯 만지고 촬영하는 관람객들. /사진=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말이 다가오면 연인이나 어린 아이가 있는 부모에게 으레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주말에 뭐 하지?'가 바로 그것. 뻔하지 않은 이색적인 데이트나 자녀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니 '여기 괜찮겠다' 싶은 곳이 나온다. 음료를 마시면서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귀여운 동물까지 만질 수 있는 '동물 카페'다.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라쿤이 모여 있는 '라쿤 카페'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동물 카페 중 하나다. 단순히 라쿤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 사막여우나 미어캣도 있으니 그야말로 '동물 천국'이다. 하지만 마냥 행복해 보이는 라쿤 카페의 이면을 들추면 동물권을 보장받지 못한 슬픈 라쿤이 있다.

머니투데이

카페에 동물이 있다고? 독특하긴 한데...

지난해 방영된 MBC every1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한국 여행에 나선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의 친구들이 고양이 카페를 방문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들은 고양이 카페를 신기해 하면서도 "독일에서는 이런 카페를 하지 않을텐데", "바로 동물단체가 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를 지켜본 친구 다니엘도 "독일은 (동물)보호를 넘어서 복지에 힘쓰고 있다"며 생소함을 드러냈다.

동물 카페는 확실히 낯선 공간이다. 동물 카페는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업종으로 1998년 대만에서 최초로 시작해 2000년대를 거치며 한국과 일본, 태국 등에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와 고양이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전시 동물 종도 다양해졌다. 위생·동물 전시 관련 규정이 강화되고 있는 유럽에서 왔다면 생소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고양이 카페로 시작해 2010년 이후 라쿤을 비롯, 각종 야생동물을 모아놓은 동물 카페로 확장됐다. 미어캣, 왈라비, 페럿, 사막여우, 프레리독 등 종류도 동물원처럼 다양하다. 지난해 동물권 단체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발간한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 약 30여 개의 업체가 운영 중이다. 서울이 10여 곳으로 가장 많았는데 대체로 젊은층이 몰리는 마포구에 몰려 있었다.

20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점차 인기를 더해가고 있지만 야생동물 카페는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많은 동물과 사람들이 접촉하는 특수한 공간이지만 '식품위생법' 상 일반 음식점이나 다름 없어 당국의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다. 10종·50개체 이상의 동물을 보유해야 환경부와 시·도지사 지도점검 대상이 되는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도 많아 대부분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머니투데이

대다수의 야생동물카페에는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이 합사된 경우가 많아 종간 다툼이나 감염이 우려된다. /사진제공=동물권단체 어웨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을 빼앗는 것은 아닐까



딱히 문제 삼을만 한 것이 없으니 야생동물 카페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권리와 사육 환경이 조명된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만을 눈에 담아갈 뿐이다. '잘' 살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오지랖 같다. 지난해 여자친구와 서울 대학로의 야생동물 카페에서 데이트 한 적이 있다는 취업준비생 이모씨(25)는 "'카페에서 알아서 잘 관리하겠지'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큼 정말 동물들도 잘 살고 있을까. '야생' 동물이 좁은 카페에서 사육되니 삶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감안하고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어웨어가 서울 시내 야생동물카페 9곳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의 업체가 부적절한 사육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어웨어에 따르면 3곳의 카페가 일어서거나 보행 등 정상적인 행동이 어려울 만큼 좁은 철장에 라쿤을 무더기로 방치하고 있었다. 겁이 많은 라쿤을 비롯, 야생동물에게 몸을 숨길 곳은 필수지만 은신처를 제공한 곳은 고작 한 곳 뿐이었다. 평균 10시간, 길게는 14시간까지 운영하는 카페에 따로 분리된 사육시설이 없어 동물들은 하루 종일 방문객에 노출됐다. 관리 인원이 거칠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야생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다.

이러다 보니 다치거나 이상행동을 보이기 일쑤다. 다수의 동물들이 신체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무기력증을 앓았고 한 자리를 맴돌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하는 라쿤도 많았다. 황주선 강원대학교 야생동물학연구실 연구원은 "시각적·청각적으로 끊임없이 노출되고 사람과 직접 접촉까지 가능해 동물이 느끼는 공포와 스트레스가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옥과 다를 게 없다

실제로 동물카페의 동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야생동물 카페를 찾았다. 카페에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아래층에서부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카페에 들어가니 예민한 사람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악취가 났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보였다. 관람객들이 갈아 신는 슬리퍼에는 동물의 털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머니투데이

지난 12일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카페에 있는 라쿤의 모습. 홀로 좁은 공간에 갇힌 라쿤(왼쪽)은 불안한 듯 쉴 새 없이 이리저리 움직였고 벽 아래 공간으로 손을 뻗어 사람을 찾았다. /사진= 유승목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지난 12일 찾은 야생동물카페에서 사육되고 있는 왈라비(왼쪽)와 미어캣의 모습. 왈라비는 무기력하게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 유승목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들어서니 작은 크기의 미어캣 한 마리가 있었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카페에 오직 한 마리 뿐이란다. 야생에서 무리를 지어 숨어 사는 미어캣이 자신보다 큰 동물들 사이에서 홀로 지내니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당연했다. 말썽을 피워 가둬놓았다는 라쿤 한 마리는 좁은 공간에 홀로 있는 것이 불안한지 단 1초도 쉬지 않고 벽을 긁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쉴 새 없이 내뱉은 소리는 마치 비명 같았다.

일반 카페와 다를 바 없는 바닥 재질은 흙과 물 웅덩이에서 사는 것이 어울리는 야생 동물들이 발 디디기에 불편해 보였다. 뜀박질을 하는 왈라비의 긴 발톱은 시멘트 바닥과 어울리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동물 카페를 찾은 이모씨(27)는 "인터넷에서 보고 기대했는데 냄새도 심하고 환경이 열악한 것 같다"며 "따지고 보면 감옥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이 곳에서 동물들이 행복할 것 같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람도 행복하지 않을텐데

단순히 동물의 행복과 삶의 질만이 문제는 아니다. 동물 카페는 인간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동물카페는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 특히 이색 경험을 위해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방문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면역력이 낮은 어린이의 질병 감염 우려가 높다.

대부분의 야생동물 카페는 보건·위생적으로 우려되는 환경이다. 야생동물 카페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접객업 중 휴게음식점 또는 일반음식점으로 영업하는데 이에 따라 동물 사육 공간과 식음료를 섭취하는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어웨어 조사에 따르면 9곳의 업체 중 6곳이 공간 분리 없이 영업하고 있었다. 또 음료를 마시는 곳 주변에는 동물의 배변도 있었다.

이런 환경은 감염 질병을 낳을 수 있다. 특히 환기가 잘 되지 않고 동물의 배변물이 주변에 있는 공간에서 음료 섭취 시 분진 형태의 배변물까지 흡수될 수 있다. 지난해 국립생태원이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라쿤이 매개하는 기생충은 10종이고 바이러스는 광견병을 포함해 12종에 달한다. 라쿤의 분변에서 배출되는 '라쿤 회충'은 치사율이 높은 내장유충이행증을 낳는데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이 취약하다.

머니투데이

지난해 동물권단체 어웨어가 서울시내 야생동물카페 9곳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표= 유정수 디자인기자


또 카페 대부분이 개와 라쿤을 같은 공간에서 합사한 경우가 많은데 라쿤은 광견병, 개홍역을 전파할 수 있어 인수공통감염 위험도 높아진다.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라쿤, 개, 사람 등 여러 종의 동물이 섞인 동물카페는 보건에 큰 위협이 되며 종간 전파로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사대상 카페 9곳 중 광견병 예방접종 증명을 게시한 업체는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이처럼 동물복지·공중보건 측면에서 우려가 높아지며 최근 국회에서 '야생동물카페 금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동물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영리 목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사각지대에 있는 동물카페에 대한 관리가 어느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규제만큼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카페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 자체가 동물복지 후진국임을 증명하는 일"이라며 "야생동물카페가 확산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