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폐업자 100만명 눈물
양산 신도시 1억 들여 반찬가게 낸 부부
2년 만에 폐업하고 남은 건 보증금뿐
자비로 점포 철거하고 중고 헐값 매각
생계 위해 4번째 사업으로 백반집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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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늘며 중고물품 넘치는 황학동
70만원대 튀김기가 고철값 몇천원에
불경기라 연식 오래된 제품 거래도 안돼
경남 양산 신도시 상가에서 반찬가게를 열었다가 2년 만에 폐업한 정재영씨가 지난 3일 점포 내부를 뜯어내는 현장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다. 인테리어와 시설에 7,000여만원을 투자했지만 중고 매각 수익은 200만원에 불과했고, 철거비용으로 45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폐업 후 손에 쥔 돈은 가게 보증금 정도가 고작이지만, 정씨 부부는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빚을 얻어 다음 창업을 준비 중이다. 송은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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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일 경남 양산 신도시 상가의 한 점포. 66㎡ 매장 안팎에 소형 굴착기 두 대가 먼지를 날리며 굉음을 울린다. 인부 4명이 폐업한 점포 내부를 모조리 뜯어내는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바닥ㆍ벽에 꼼꼼하게 시멘트를 바르고 얹은 말끔한 타일과 큰맘 먹고 설치했던 간접 조명설비까지 한나절 만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콘크리트 더미가 됐다. 이날 공사 비용은 폐기물 처리를 포함해 450만원. 현장에서 만난 업자는 “바닥만 그대로 뒀어도 150만원이면 됐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이제 이곳이 반찬가게였다는 흔적은 유리문에 스티커를 떼어내고 남은 흐릿한 상호 자국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일주일 전까지 사장님이었던 정재영(가명ㆍ58)씨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마른 세수를 했다.
2년 전 신도시 대형상가의 이곳 점포로 가게를 옮길 때만 해도 정씨 부부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구도심에 위치한 기존 반찬가게는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신도시에 새 아파트촌이 형성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 동네 쪽으로 안 오세요?”라고 묻는 단골이 늘고 이들의 발길도 뜸해졌기 때문이다. ‘상권이 옮겨간다면 별 수 있나, 따라야지’ 새 점포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80만원. 월세가 비싼 게 걱정됐지만 ‘그게 시세라 하니 어쩔 수 없지, 장사만 잘 되면 괜찮겠지’라며 각오를 다졌단다. 의욕이 앞서면서 매장 인테리어와 집기를 고급 제품으로 고르며 추가로 7,000만원을 썼고, 그렇게 1억원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2년 뒤 폐업. 부부의 두 손에 남겨진 돈은 고작 보증금 3,000만원뿐이었다. 이달 점포 재계약만기일을 앞두고 정씨가 계약포기 의사를 밝히자 건물주로부터 ‘임대차계약대로 원상복구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점포를 양수할 이를 수소문했지만 월세가 발목을 잡았다. 관심을 보이던 이들도 모두 임대료에 손사래를 쳤다. 별수없이 고스란히 자비를 들여 철거해야 했다.
눈물조차 가로막은 어처구니없는 폐업 계산서를 손에 쥐고도 정씨 부부는 놀랍게 다시 창업을 준비한다. 생계를 위해선, 또 다른 시작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불투명해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환갑도 안됐으니 다시 살길을 찾아야죠. 쉰다고 실업급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두 달 뒤에는 문 열어야죠.” 요즘 정씨의 관심은 인근 병원 앞에 백반집을 새로 여는 데 쏠려있다. 그에겐 책 대리점, 칼국숫집, 반찬가게에 이어 네 번째 사업 아이템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보는 주변의 전망은 밝지 않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그 골목(백반집 창업지)은 올 초 점포들이 물갈이됐는데, 그런 덴 다 이유가 있다. 쉽지 않을 텐데”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했다.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이들이 매년 100만명(2017년 폐업자 90만8,076명)에 달한다. 끝내 폐업을 선택하는 자영업자들은 무엇보다 과포화인 시장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씨 부부처럼 어쩔 수 없이 빚을 키워가며 폐업과 재창업을 반복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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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권 생기자 고객 분산…경쟁업체 5배↑
장사가 어려워 진 건 과당경쟁 탓이었다. 처음 2곳에 불과했던 경쟁 반찬가게는 1년 반 만에 10곳으로 무려 5배나 늘었다. 7곳은 프랜차이즈였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마다 정기적으로 장이 열려 이곳에서 반찬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상가에 입주한 한 기름집 주인은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항아리 상권’이라 해서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고 들어왔는데, 아파트마다 장이 생겨 세금 한 푼 안 내며 온갖 품목을 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정된 고객을 두고 경쟁 업체뿐 아니라 이동하며 장사하는 상인까지 가세해 다툰다.
자영업 컨설팅 전문가 추지호씨는 “입점 당시 프랜차이즈 같은 곳은 점포개발팀이 상권분석을 해주지만 조사한 그때가 상황이 가장 좋고 옆에 다른 점포가 생기면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자금력 있는 업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정리되는 수순을 거치게 된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인근에 지하철역이 생기자 반사 이익은커녕 기존 고객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하철역 주변에 대형상가가 새로 들어선 것이다. 상가 공급이 늘면서 장사를 포기하는 빈 점포가 늘어갔고, 썰렁한 상가를 찾는 고객은 더욱 감소했다.
생계 때문에…폐업 후 재창업 ‘악순환’
“월 120만원까지 해줄 생각이 있다네.“
뒤늦게 나타난 남편 이기영(가명ㆍ59)씨의 얼굴이 땀범벅이다. 인근 병원 골목에 매물로 나온 음식점을 알아보고 오는 길. 부부는 이곳에 가정식 백반집을 오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월세를 130만원에서 10만원 깎을 수 있겠다는 소식을 싱글벙글 전하는 남편을 보며 정씨의 얼굴에도 이날 처음 미소가 지나갔다.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
사실 ‘작은 곳이라도 취직했으면’이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이는 많고 경력은 단절돼있다. 고령화 사회에 남은 생이 길어 어쩔 수 없이 ‘차악’인 재창업의 길을 걷는다. 7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일자리를 원하는 비율은 64.1%로 전년보다 1.5%증가했고,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59.0%로 가장 많았다. 나이가 들어도 생계유지에 나서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조바심에 충분한 준비 없이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신규 자영업자의 사업준비 기간은 3개월 미만이 51.9%로 나타났다. 추지호씨는 “수익성은 미리 따져봤냐고 물으면 ‘그냥 했다’는 사업주가 많고 준비 기간도 짧은 경우가 대다수”라며 “준비되지 않은 자영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현상이 반복되는데, 대부분 생계형이라 무조건 버티다 더 큰 손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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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전환 반복하다간 개미지옥 될 수도
재창업을 하려면 정씨 부부가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백반집을 낼 점포의 보증금은 5,000만원. 부족한 보증금 2,000만원과 새 점포를 꾸미는데 필요한 시설비를 마련해야 한다. 해결 방법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온 답은 “소상공인 대출 받아야죠” 정부가 지원하는 자영업자 대출에 의지하겠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번 채무를 얻기 시작하면 다중채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예희씨는 “요즘 채무없는 자영업자를 찾기 힘들다. 처음에는 대출을 받다가 현금서비스, 카드론, 사금융으로 넘어간다. 폐업 희망 사업주 10명 가운데 7명은 대출이 있고 이 가운데 90%는 다중채무를 지고 있으며 돌려막기를 하며 위험수위에 다다른 경우도 30%에 이른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처음엔 쉽게 빌릴 수 있지만 정말 힘들 때 빌릴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는 분도 많아요. ‘4,000만원쯤일 거예요’라고 했는데 금융거래확인서를 보면 6,000만원이 넘는 식이죠.” 실제로 각종 금융통계를 보면 자영업자 빚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2013년 346조1,000억에서 2017년 549조2,000억원에 달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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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잦은 업종 전환은 빚이 불어나는 지름길이다. “지난달 장사를 완전히 접은 40대 부부는 6년 전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시작한 이후 삼겹살집, 불고깃집, 호프집까지 업종을 3번이나 바꿨어요. 그때마다 인테리어, 시설투자비가 새로 들고 빚이 빚을 낳았죠. ‘알아서 빼가겠지’하며 빚이 얼마인지도 파악 못 하길래 도표로 정리해주니 2억이 넘은 걸 보고 본인이 더 깜짝 놀라더라고요.”
중고가전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24일 오후 자영업자로 보이는 고객이 구입한 중고 냉장고를 힘겹게 운반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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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손님이 재창업한다며 다시 찾아와
지난 18일 중고가전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양종합주방. 전날 폐업한 천호동 모 분식집에서 들어온 1m높이 육수용냉장고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식당에서 2년, 분식집에서 5년 동안 거듭 사용된 냉장고의 뚜껑을 열자 바닥에 콩국물이 흥건하다. 이 매장 김효율 부장은 “냉장고는 음식점 필수품인 데다, 특히 육수용은 여름철에 불티나게 팔린다”라며 “하루 이틀이면 주인을 찾을 거라 제품을 입구 쪽에 내놨다”고 했다. “젊은 창업자들은 새 물건을 찾는 경우가 열에 한 명 정도밖에 안 돼요.” 5년 전만 해도 창업 때 새 물건을 찾는 이가 많았지만 요즘은 처음부터 중고를 찾는 경우가 늘어 회전이 빠르다고 했다.
김 부장은 “이것도 기본적인 제품이라 금방 나갈 것”이라며 신사동의 죽 전문점에서 가져왔다는 테이블냉장고를 가리켰다. “이건 3년 전에 가게 낼 때 사간 걸 폐업하면서 다시 가져온 거예요. 이렇게 창업 때 팔았던 물건을 되사오기도 하고, 예전 고객이 업종을 바꿔 창업하겠다고 다시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만큼 창업과 폐업, 재창업을 반복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얘기이다. “장사가 안되면 자기 탓이라는 분은 드물죠. 경기가 안 좋고, 임대료가 비싸고, 상권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권이나 업종을 바꾸면 잘 될 거라고 믿고, 한식집을 하다 순댓국집으로 메뉴만 바꿔 다시 문을 여는 거죠.”
[저작권 한국일보]황학동 주방거리의 매장에 놓인 중고가전들. 육수용냉장고(왼쪽부터)는 한식당 2년, 분식점 5년을 거쳐 세번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냉장고는 3년 만에 폐업한 신사동의 죽 전문점에서 가져온 것. 커피머신은 점포 재계약에 실패한 카페 주인 부부가 폐업하면서 이곳까지 왔다. 송은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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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 위치한 조은종합주방 진열장엔 주로 커피점에서 쓰이는 중고 커피머신과 원두분쇄기가 잔뜩 쌓여있다. 가운데 놓인 푸른빛 커피머신은 부부가 운영하던 국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쓰이던 것. 하지만 영업 4년 만에 건물주와 계약 연장을 놓고 다투다 부부가 폐업하면서 이곳까지 쓸려왔다. 부부가 본사에서 구입한 가격은 700만원대지만 이곳에선 200만원대 중반에 팔린다. 매장 주인은 ‘매입가격은 영업비밀’이라면서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비싸게 사 우리한테 싸게 파는 걸 보면 속으로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넘치는 중고…통일 기다린다는 상인들
폐업이 크게 늘어난 탓에 중고물품이 급증하면서 중고시장에서는 일부 필수품목 외에는 전보다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 중고 가전을 수거ㆍ매입해 황학동에 파는 한 중개상은 “냉장고, 튀김기 등 몇몇 인기품목을 제외하면 연식 2, 3년 이상 제품은 거래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10년째 황학동에서 영업해온 김 부장도 “중고품은 넘치지만 경기가 안 좋다 보니 팔지 못하고 창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 많아지고 있다”며 “자칫하단 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어 섣불리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팔리지 않은 물건은 고물상에 넘겨 고철값이라도 건졌지만 요즘 고철시장 사정도 달라졌다. 수년 전만해도 중국에서 원자재를 싹쓸이해간 덕분에 가격이 좋았지만 최근에는 수입이 뚝 끊겨 타격이 크다. “스테인리스 가격이 크게 떨어져서 70만원대 튀김기도 고작 몇천 원 받아요. 게다가 고물로 팔려면 제품을 분리해야 하는데 그게 다 수작업이라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고물상에서도 피해요. 그래서 중고시장에서는 판로가 늘어날 길은 통일뿐이라며 ‘통일만 기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입니다.”
양산=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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