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봉투 폐기, 의료 폐기물 소각 등 반려동물 사후처리 방식 아직 미숙…장례·추모로 사회문제 덜기도]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 장례절차 중 가족들이 추모하는 공간. /사진= 펫 포레스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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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있었다. 사람은 아니고 개다. 15년을 동고동락했지만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아팠던 건 아니고 나이가 많았다. 예상은 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첫째는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가족이자 동생으로 생각하다보니 '개'의 수명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개의 생애주기는 사람과 다르다. 사람 나이 열다섯은 점점 하늘로 뻗어가는 소년이지만 개의 열다섯은 땅으로 기우는 노년이다. 쏜살같은 노견의 시간에 발맞추기란 쉽지 않다. 고양이나 토끼, 고슴도치도 마찬가지다. 가족으로 받아들인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은 반려인의 숙명이다.
이러한 숙명을 가진 반려인은 한 둘이 아니다. 반려문화가 자리 잡으며 반려인 '천만'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전체의 28.1%로 약 593만 가구에 달한다. 네 가구 당 한 집 꼴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나 집 근처 공원, 한강 등지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주인과 함께 뛰노는 반려동물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반려견과 동반입장이 가능한 식당과 카페도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 정치인들도 선거철이면 반려동물 관련 공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려문화는 반쪽에 불과하다. 우리사회와 반려인·비반려인 모두가 반려동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고 있지만 떠나보내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례·추모문화 등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받아들일 땐 가족, 보낼 땐 쓰레기통?= 집에서 키우는 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바뀐지 15~20년 정도 됐다. 도처에 동물병원과 미용실이 생기고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유명 복합 쇼핑몰에서 사람과 개가 함께 쇼핑을 즐기는 광경을 볼 수 있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개의 수명이 약 15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의 삶을 살기 시작한 첫 세대 개들이 노견이 돼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반려동물의 사후처리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반려동물 사후처리 방식으로 땅에 매립하는 방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동물 사체를 임의로 땅에 매장하거나 무단투기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적발될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적으로 '사유재산'에 불과한 반려동물 사체는 '폐기물' 취급을 받는다. 폐기물 관리법에 의해 일반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동물병원에 맡겨 소각하기도 하는데 이마저도 '의료용 폐기물'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반쪽짜리 반려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방식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반려인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에게 예와 격식을 갖추는 우리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다. 환경적 우려도 크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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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걸음마 뗀 장례문화= 이에 따라 격식을 갖춰 반려동물을 화장(火葬)하고 장례를 치르는 장례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동물장묘업체는 현재 27곳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인 강성일 펫포레스트 실장은 "반려동물 생애주기를 따지면 반려인에게는 일종의 '자식'의 개념이다"라며 "반려문화가 정착되는 동안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사후처리 방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최근 동물장묘업체 증가는 그 갈증해소 과정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북 임실군은 지난달 농림부 주관 2018년도 공모사업 중 하나인 '공공장묘동물장묘시설 설치 지원사업'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2년 간 50억원을 투입해 8천680㎡ 규모 부모에 수목장지, 장례식장, 야외봉안당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임실군은 "친환경적이고 품격있는 반려동물 사후처리를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까지 비반려인은 물론 반려인에게도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익숙한 것은 아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한 반려동물 54만 마리 중 화장된 동물은 5.8%(약 3만1000마리)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정보 부족을 꼽는다. 박정훈 (사)한국동물장례협회 사무국장은 "동물장례문화 자체를 아직 모르는 반려인이 많기 때문"이라며 "지난해부터 점차 알려지기 시작해 최근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동물장례협회는 반려인이 전화로 문의하면 거주지에서 가깝고 이용하기 좋은 장례업체를 알려주고 있다.
쉽게 이용할만큼 충분하지 않은 업체 수도 문제로 지적된다. 매년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27개 동물장묘업체 수는 반려인구와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수도권에 절반에 가까운 업체가 집중돼 지방에 거주하는 반려인은 접근성 문제로 포기하기도 한다.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더디게 설립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지역주민과의 갈등 문제가 가장 크다. 사체를 소각하는 만큼 '혐오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박정훈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대기환경법 강화로 시설기준이 높아 환경적으로 문제도 없고 사람들이 찾는 추모'공간' 의미가 강해 외관으로는 장례식장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오해가 큰 만큼 이를 풀어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도 광주의 한 동물장묘업체는 '광주시 아름다운 건축'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마을 경관에 일조해 주민들 마음을 열었다.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이 장례 절차 중에 입는 수의와 안장되는 관의 모습. /사진= 유승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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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처리? '추모'가 중요= 반려동물을 화장하는 반려인들은 단순히 사후처리의 의미보다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어 만족한다. 얼마전 반려견을 떠나보낸 윤모씨(61·여)는 화장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 윤씨는 "가족으로 생각한 만큼 정성을 다해 장례를 진행하니 한결 마음이 좋았다"며 "납골당에 반려견을 두니 자주 찾아 기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반려동물은 정성스럽게 수의가 입혀지는 등 사람과 비슷한 장례 절차에 따라 화장된다. 유골은 스톤으로 제작돼 반려인이 보관할 수도 있다.
지난 21일 찾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한 동물장묘업체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분주했다. 이 곳에는 장례를 치른 반려동물의 납골당이 마련돼 있다. 반려견이 가장 많지만 고양이나 토끼, 햄스터 등 안장된 반려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납골함에 생전 함께 찍은 사진이나 반려동물이 좋아했던 간식 등을 올려 놓은 반려인들은 장례를 치른 뒤에도 주기적으로 납골당을 찾는다. 홀로 오기도 하고 주말에 자식과 부모가 함께 방문해 시간을 보내다 가기도 한다. 연말에는 추모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고 반려동물 관련 강연도 열린다. 말 그대로 추모 공간이다.
이 같은 장례·추모 문화는 반려문화가 정착되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펫로스'(Pet loss) 증후군에도 도움이 된다. 펫 로스 증후군은 가족과 동일시한 반려동물이 죽은 뒤 경험하는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을 말한다.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성일 실장은 이에 대해 "장례와 지속적인 추모는 갑작스럽게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상실감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떠나 보내는 방식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동물복지와 반려동물 관련 사회문제를 줄이는 데도 성숙한 장례문화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박정훈 한국동물장례협회 사무국장은 "개 식용보다 어쩌면 동물유기, 사체처리가 동물복지의 더 큰 걸림돌"이라며 "병든 노견이라는 이유로 버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사후처리 문제 때문이기 때문에 선진 장묘문화 정착이 필수"라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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