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8 (화)

'함지박 사거리' 그 함지박 사라진다…자영업 대란 못 피한 듯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함지박 사거리’ 그 함지박 사라진다
40년 전통 중국집, ‘자영업 대란’ 못 피한 듯
강남 자영업, 장기불황·임대료·인건비 ‘삼중고’
지난해 4대 자영업 폐업률은 88.1%로 역대 최고치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는 ‘함지박 사거리’가 있다. 정식 도로명은 ‘동광로’지만, 근방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냥 ‘함지박 사거리’로 통한다. 함지박 사거리는 동광로 22길에 자리한 중식당 ‘함지박’에서 따온 명칭. 40년 역사를 품은 이 중국집이 문을 닫는다. 장기불황에 주변상권이 말라 붙은 데다, 최근 자영업 대란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함지박에는 "지난 40년간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함지박은 오는 8월 21일까지만 영업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이날 정오를 넘긴 점심시간에는 단골손님들이 ‘작별인사’차 몰렸다. 복도에만 대기손님 30여명이 줄 섰다.

조선일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서울 방배동의 중식당 함지박. 건물 외벽에 이달 21일을 마지막으로 폐업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김소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5년 전 처음 왔을 때부터 똑같은 지배인, 주방장이 자리를 지켰던 중국집이야. 여기서 처음 맛 본 자장면 맛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이날 점심시간에 함지박을 찾은 단골 신종성(69)씨가 말했다. 그의 마지막 주문은 역시 자장면이었다.

1978년 문을 연 함지박은 서울 ‘방배동 상권’의 중심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 명사들이 자주 찾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폐업소식을 접한 함지박 단골은 소셜미디어(SNS)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에게는 상견례 장소였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비싼 자장면 집이었을 것이다. 함지박 없는 ‘함지박 사거리’는 마치 덕수궁이 없는 돌담길이나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부친으로부터 함지박을 물려받은 안태준(57) 대표는 "(가게)운영비용은 늘어가는데 그만큼 수익이 늘어나지 않아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면서 "안타깝지만 40년 이어온 것만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40년 식당’의 폐업은 강남 상권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함지박 사거리’ 부근의 자영업자 권모(52)씨는 "어느 날 갑자기 최저임금이 올라서 종업원 한 명만 뽑아도 월 240만원 이상 쥐어줘야 한다"면서 "비싼 강남 월세까지 감당하면서 장사하기가 정말로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함지박은 20여명의 종업원이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지박 사거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모(56)씨도 "장기불황으로 장사 안 되는데 임대료는 꿈쩍 안 하지, 거기다가 인건비까지 치솟으니 더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라면서 "함지박 사거리 뿐만 아니라 신사동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도 폐업하는 가게가 줄줄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 숙박, 도소매업 등 4대 자영업 폐업률은 88.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쪽에서 가게 10곳이 문 열면 다른 쪽에서 9곳이 간판을 내렸다는 뜻이다.

‘전통 가게’가 살아남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식당에 대한 홍보가 주로 인터넷이나 SNS로 이뤄지는 추세"라면서 "함지박의 경우 중장년층에게는 입소문이 난 곳이지만, 20~30대가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언급이 되지 않았던 게 패착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동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