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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사우디에 페미니스트 ‘해적방송’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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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이 허용되면서 나온 자동차 광고.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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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 여성 인권을 위한 ‘해적방송’이 등장했다.

19일(현지시간) BBC는 ‘사우디에 페미니스트 방송이 생겼다’며 사우디의 여성 인권을 위해 탄생한 인터넷 라디오 ‘나사위야 FM’을 소개했다. FM은 페미니즘(Feminism)에서 따온 약자다.

‘나사위야 FM’은 3주 전 트위터를 통해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방송 시작을 알렸다. 이후 주 1회, 1시간씩 두 번 방송했다.

사랑과 전쟁의 여신, ‘아쉬타르‘를 필명으로 사용하는 방송 관계자는 BBC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리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사람들에게 우리(페미니스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이는 방송 진행자 2명을 포함해 11명이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사우디 국적자이며, 현재 사우디에 거주하는 이들도 있다. 방송과 관련해 공개된 것은 이것뿐, 나머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사우디 정부가 최근 여성 인권 활동가들을 잇달아 체포하는 등 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방송하는 장소가 어느 나라인지, 관계자들이 어느 나라에서 공부를 하는지, 일을 하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아쉬타르는 “시간대가 다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장비가 열악해 음질도 좋지 않다. 그러나 내용만은 모자람이 없다.

최근 방송에선 예멘 남성과 결혼하기를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남동생에게 살해당한 33세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 형제와 삼촌에게 구타당한 뒤 자살한 여성의 사연도 방송을 탔다. 21세기에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는 사우디 여성의 현실을 가감 없이 청취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소 급진적이기도 하다. 아쉬타르는 BBC에 여성이 부족을 이끌던 이슬람 이전의 중동의 모계 사회에 대한 동경도 드러냈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나다고 믿는다”며 “여성이 사법부 등 특정 분야에서 다시 권력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경제활동을 장려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조치를 단행했다.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경제 개혁 ‘비전 2030’의 일환이다.

사우디의 여성인권 활동가들은 더 나아가 ‘남성 보호자(마흐람) 제도(주요한 법적 행위에 보호자 자격의 남성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 제도)’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받는 이 제도야말로 명백한 성차별이라면서다.

한편 UN에 따르면 사우디 당국은 지난 5월 이후 여성인권 활동가 등 최소 17명을 외국의 정치권과 접촉한 혐의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 시민권자인 여성운동가 사마르 바다위를 체포해 캐나다와 외교 갈등도 겪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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