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 방송에 출연해 현직 도지사이자 유력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 정치인에게 여러 차례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 김 씨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은 그러나 5개월여 만에 1심 무죄 판결이 나면서 피해자는 물론 그를 지지하던 여성단체들도 큰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김 씨는 "부당한 결과"라며 "안희정의 범죄 행위가 정당하게 심판받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여성단체들은 "검찰이 즉각 항소해야 한다. 우리의 대응은 항소심, 대법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도 판결을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반면 안 전 지사의 지지자들은 "완벽한 무죄다. 무고죄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엇갈린 여론과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항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상급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렇다고 1심 재판부가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형사재판은 죄형법정주의와 객관적 증거, 엄격한 법 해석을 기초로 하는 만큼 이에 어긋날 경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 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두 가지를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판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결국 입법부 등 당국이 성폭력 처벌 관련 법 규정을 좀 더 세밀하게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이번 판결은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촉발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미투'(Me Too) 운동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이다. 이번 일이 자칫 미투 운동을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또 몰카 등 사이버 성범죄의 수사와 재판에서 여성이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여성계의 불만도 증폭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성범죄에 대해서는 남녀 구분 없이 엄중히 수사하고 처벌한다는 방침을 유지해야 한다.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안 전 지사는 불륜이라는 비윤리적 행위까지 용서받은 게 아닌 만큼 반성하고 자숙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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