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3·1운동 1주년 ‘만세시위’ 주도로 옥고, 배화여학교 6명 등 독립유공자 인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허은·이은숙 선생 등 117명에 훈·포상…광복절 기념식장서 수여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20년 3월1일 오전, 서울 배화여학교 학생 수십명이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일제히 “조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가 3·1운동 1주년을 앞두고 만세시위의 재현을 우려해 살벌한 경계태세를 갖춘 상황이었다. 하지만 10대의 학생들은 일제 경찰에 맞서 독립만세를 외침으로써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시위를 했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학생들 일부는 경찰에 체포됐고, 감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당시 배화여학교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소은명, 안옥자, 안희경 등 공적과 옥고가 확인된 6명이 마침내 대통령표창을 받으며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게 됐다.



경향신문



국가보훈처는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감시 속에서 3·1운동을 재현한 배화여학교 학생 6명과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한 석주 이상룡의 손부 허은 선생 등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77명을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포상 대상인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애족장 62), 건국포장 26명, 대통령표창 58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15일 개최될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만주에서 독립군의 항일투쟁 지원에 헌신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는 허은 선생은 친정과 시댁 모두 대표적인 독립운동 명문가로 손꼽힌다.

1915년에 일가족과 서간도로 망명한 그는 부민단 등 현지 독립운동단체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 등에 참여하며 민족독립의식을 키웠고, 1922년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손자인 이병화와 결혼했다. 이후 1932년 귀국할 때까지 서로군정서 독립군들의 군복 보급 등 서간도 무장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했다.

전남 강진에서 독립만세운동를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김윤식 선생(시인 김영랑)에게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김 시인은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제작하다 체포됐다. 일제의 끈질긴 회유에도 그는 시를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기지 개척을 도우며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한 ‘혁명가족의 안주인’이자 우당 이회영의 부인인 이은숙 선생, 황해도 신천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른 곽영선 선생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1919년 3월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중 만세시위에 참가한 곽 선생은 1993년 애국장을 받은 곽림대 선생의 딸로 부녀가 독립운동에 헌신해 서훈된 흔치 않은 사례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평남 순천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최복길·김경신·김화자·옥순영·이관옥 등 5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과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계석노 선생, 무장 독립군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중형을 받은 한성호 선생 등에게도 건국훈장이 추서된다.

보훈처는 “지난 4월 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하면서 실형을 받지 않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내용이 분명하면 포상을 전향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만912명, 건국포장 1253명, 대통령표창 2887명 등 1만5052명(여성 325명)이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