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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허위 선생 증손녀 등 독립유공자 후손 31명 국적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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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광복절 맞아 증서 수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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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주권 찬탈에 항거해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허위 선생(1854~1908)의 증손녀 등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 10명의 후손 31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법무부는 13일 중국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에 거주하고 있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허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을 조직해 참모장을 맡아 싸웠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뒤에는 전국 13도 연합의병부대를 구성해 군사장을 맡았다. 이후 일본군을 몰아내고 경성(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경성진공작전 등을 벌이며 격렬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일제에 체포돼 이듬해 9월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로 순국했다. 그의 후손들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흩어졌다.

허 선생은 1962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1등급 서훈인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러시아에 사는 증손녀 최모씨(62), 카자흐스탄에 사는 증손녀 정모씨(57),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5대손 한모씨(8) 등 후손 6명이 이번에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중국에 살고 있던 박찬익 선생(1884~1949)의 후손 5명도 국적을 받았다. 박 선생은 1910년 대한민국이 일제에 병합되자 북만주로 망명해 대한독립의용군을 조직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외무부 외사국장을 지냈다. 1933년 중국 낙양(洛陽)군관학교 내에 한국독립군 양성을 위한 특별반이 설치될 수 있도록 장제스와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일제강점기 북간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계봉우 선생(1880~1959)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 한국 역사와 국어를 연구해 보급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의 후손 3명도 이번에 국적을 받았다.

서울 여의도에서 빅데이터 업체의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계 선생의 증손자 최유리씨(37)는 증조부에 대해 “항상 품행이 곧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한다.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셨는데 결국 못 밟고 카자흐스탄에서 1959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받은 후손들의 기존 국적은 중국이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러시아 7명, 쿠바 5명, 우즈베키스탄 3명 등이었다. 정부는 2006년부터 12차례에 걸쳐 총 29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지난 4월엔 독립유공자 후손의 배우자 7명에게도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 바 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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