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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해학을 넘어선 파격…‘민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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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갤러리 현대, 서울서예박물관

‘저급하다’ 인식 깨고 회화미 부각

국내외 순회전·아트페어 출전하며

대중 민화 붐 조성 대대적 협력전

최근 인기 단색화 부합되는 마감

현대미술과 코드 맞는 독특한 추상

“한국회화 대표 장르로 손색 없어”

개인 컬렉션 띄우기 등 논란 속

화단 새 창작 트렌드 될지

경매가격 띄우기 그칠지 관심



오늘날 한국인이 ‘민화’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미술 교과서에서 주로 알려준대로 ‘까치와 호랑이’로 대표되는 해학과 풍자성 가득한 서민의 그림일 것이다. 조선 말기 선비들이 세속의 저급한 그림으로 폄하했던, 이른바 ‘속화’에 가깝다. 그런데, 올여름 들어 이런 뿌리깊은 인식에 균열을 내려는 듯 ‘민화 다시 보기’ 바람이 본격적으로 일고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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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 띄우기 ‘쌍끌이 작전’ 한국을 대표하는 상업화랑인 갤러리 현대와 국내 서예계에서 유일한 공공전시기관인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이 재조명 바람의 진원지다. 지난달부터 전체 전시장을 온통 전통 민화로 채워놓고 대대적인 ‘민화 다시보기’ 전시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 현대에서 화조화 수작 60여점으로 꾸린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 전(19일까지)과 고미술 사업가 김세종씨가 수집한 민화들을 집중 소개하는 서예박물관의 ‘판타지아 조선’ 전(26일까지)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민화에 대한 세간의 상식과는 크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꽃그림’전의 경우 대부분 고급스럽고 우아한 꽃그림들과 자수, 베갯잇 그림들로 갤러리 현대의 구관, 신관과 두가헌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패턴화라고 일컬어지는 꽃과 줄기, 넝쿨들의 연속 무늬 행렬과 그 안에서 쌍쌍이 어울린 새들과 털짐승들의 도상들이 펼쳐진다. 전통 화원이 그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구도의 8폭, 12폭 화조화 병풍들도 줄줄이 나와 보는 이들을 탄복하게 한다. 특히 신관 지하에는 이런 꽃그림을 배경으로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 기괴하고 도발적인 도상의 괴석과 동물들의 뒤얽힌 이미지들이 함께 나왔다. 단순하고 강렬한 현대미술의 개념적 도상과 잘 맞는 미니멀한 디자인 등이 도드라져 활력과 기품을 함께 겸비한 작품들이 많다. 컬렉터와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끌 만한 여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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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박물관 전시는 평창아트갤러리 대표로 도자기 등의 고미술품거래를 해온 중견화상 김세종(62)씨가 지난 10여년간 모은 책거리그림, 소상팔경도, 제주문자도, 고소설삽화, 무신도, 까치호랑이 등이 나왔다. 서민들이 그린 속화라는 기존 민화의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현대 회화의 조형미와 잇닿는 파격적 도상이 두드러져 ‘회화다운 맛’(박영택 평론가)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르다. 갤러리 현대와 서예박물관 쪽은 ‘협력전시’를 내걸며 전시회 시점도 거의 비슷하게 조율해 대중 민화 붐을 새로 일으키는데 총력을 쏟는 눈치다. 고미술협회도 다음달 민화를 중심으로 회원업체들의 전시를 인사동에서 열기로 하는 등 재조명 바람이 확산되는 조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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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에서 민화 주제의 대형 기획전은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일본 민예관 소장품들을 처음 선보였던 ‘반갑다! 우리 민화’ 전과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 민화-변화와 자유로움’ 특별전이 진행된 것을 끝으로 10여년간 열리지 않았다. 애호가들은 서울 가회민화박물관같은 작은 사설박물관이나 인사동, 장한평(장안동)의 골동품점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뛰어난 민화 작품들을 개인 소장가로부터 대거 발굴해 상업화랑 전관과 공공기관에 한꺼번에 쏟아낸 기획이 나온 건 예사롭지 않다. 현대미술 전문 화랑이 이례적으로 민화 띄우기에 나선 데다, 공공전시관도 미술 사업가의 개인 소장품을 ‘김세종 컬렉션’이란 고유명사로 명명하면서 브랜드화를 시도한 점은 과거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기획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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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명 넘는 ‘민화 인구’…시장 블루칩 될까 미술시장과 고미술업계 쪽에서는 올여름 이례적인 민화 띄우기가 미술상품 만들기 전략과 긴밀하게 연관된다고 보고 있다. 지난 3~4년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모은 단색조 회화(단색화)에 이어 현대미술과도 코드가 맞고 독특한 추상성과 개성으로 국외 애호가들에게도 호평받는 민화를 새로운 블루칩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갤러리 현대는 자체 모든 전시장을 활용한 대형 민화전을 처음 열었을 뿐 아니라 2년전엔 민화 전문가인 미술사학자 정병모 경주대 교수와 손잡고 예술의전당에서 책거리 그림 전시를 열어 지난해 미국 순회전까지 이어가는 등 치밀한 준비 작업을 해왔다.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 회장도 “70년대초 화랑을 열었을 당시부터 민화의 매력에 심취해 재평가의 기회를 기다려왔고, 이젠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가치를 널리 알릴 생각”이라며 “단색화와도 부합되는 격조와 미감을 갖고 있어 한국회화의 대표 장르로 부각하기에 손색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화랑은 내년 일본 순회전을 구상중이고 10월 영국서 열리는 프리즈아트페어에도 단색조 회화 작품들과 함께 민화들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서예박물관 쪽은 컬렉션 전시 뒤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광주은행의 후원 아래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옮겨 순회전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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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쪽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재 한국의 민화 아마추어 작가들은 1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갤러리현대가 주도하고 예술의전당이 뒷받침하는 모양새인 민화 재조명 흐름엔 2000년대 이후 폭넓게 형성된 ‘민화 인구’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월간 <민화>의 유정서 편집인은 “구체적인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특수대학원에 민화 전공이 있는 곳만 70군데가 넘고, 백화점, 지자체, 동사무소는 물론 대형마트 문화센터까지 포함하면 민화 실기를 가르치는 곳만 수백여곳이 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민화는 단순한 도상에 채색하는 것이 입문의 주된 과정이어서 배우기가 손쉽고 성취감과 자기 만족도가 크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년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어떤 방향성과 정체성을 갖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화단과 미술시장에서 유력한 창작 트렌드로 정착할 가능성도 보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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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의 ‘정체성’ 확립이 관건 그러나 전문가들은 민화는 시장이나, 화단 두 측면에서 한계도 뚜렷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통용되는 민화 개념이 서민화부터 궁중장식화, 화원 그림까지 계층별 특성을 두루 포괄하고 있어 정체성 논란이 쉬 정리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일제강점기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지은 민화란 명칭도 최근 들어 길상화·장식화·행복화 등으로 부르자는 여러 대안이 제시되지만, 학계에서는 여전히 개념과 명칭이 통일되지 않고 있다.

민화 제작 연대도 학계에서 정설로 확립된 잣대가 사실상 없어 논란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미술시장에서는 근래에 만든 작품을 오래된 명품처럼 포장한다는 ‘짝퉁’ 시비도 간간이 일곤 한다. 올여름 두 전시를 놓고서도 비슷한 시비가 불거졌다. 갤러리 현대 전시의 경우 선보인 일부 ‘강릉 자수보자기’ 작품에 대해 진위 시비가 제기돼 전시중에 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재감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김세종 컬렉션’을 강조한 서예박물관의 전시도 표기된 일부 작품의 제작 연대나 형식 등을 놓고 온라인 공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특히 ‘판타지아 조선’ 전은 공공미술관인 서예박물관이 미술품 화상의 개인 컬렉션을 단독 전시한 전례없는 시도이다보니 그 의도를 놓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출품작들이 학계 전문가들의 본격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고 ‘그림 자체의 회화성만 보려 했다’는 소장자의 의도만 강조돼 질적 수준이나 연대 분석에서 업계나 학계 의견과 큰 편차가 나타나는 등 부실함이 노출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전시의 의미와는 별개로 상업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화상의 민화 컬렉션을 공공기관이 사전 검증하지 않은 채 대놓고 전시하면, 작품 가치를 앞장서 올려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전시 기획에 신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민화는 현재 경매시장에서 궁중화조도 등 고급품은 억대에, 보통 작품들도 수천만원대에 거래돼 전통회화나 한국화보다는 월등히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올여름 도드라진 민화 재조명 바람이 올 하반기 고미술업계와 경매시장에서 거래 가격대의 급상승으로 나타날지가 우선 미술시장의 주된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창작보다 자기만족적인 모방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현대민화 작품들이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며 위상을 올릴 수 있을지도 관건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현대·가나아트센터·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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