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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쌍천만 지옥으로 이끈 CG 한류…‘털은 우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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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과함께 주역 ‘덱스터 스튜디오’

고릴라가 야구하는 영화로 ‘폭망’

움직임 불규칙한 털·불·물 구현에

전직원 최고 단계 기술 터득 매진

자체 프로그램 개발만 80여개

아시아 최고 수준 VFX 기술로

관객 눈앞에 생생한 지옥 묘사

덱스터 대표 김용화 감독

“우리 목표는 아시아의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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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는데도 폭염이 맹위를 떨친 9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덱스터스튜디오는 휴가를 떠난 직원들의 빈자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 브이에프엑스(VFX·시각적특수효과)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대다수 직원은 마치 ‘얼음!’이라는 구호라도 외친 듯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한국영화 <피엠시>와 중국영화 <썬샤인 러버>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신과함께> 1편에 이은 2편의 천만 달성이 코 앞이라며 ‘쌍천만 축포’ 기사가 쏟아지는 외부와는 달리 차분한 모양새였다. 로비에 자리한 고릴라 ‘링링’(<미스터 고> 주인공)이 손님을 맞이했다.

“불가능하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1·2편 동시 제작이라는 과감한 모험을 감행하며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를 거둔 덱스터의 성공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아시아 정킷(영화 홍보 행사)을 마치고 대만에서 막 돌아온 덱스터 대표 김용화 감독의 대답은 짧지만 강렬했다. “모든 것은 ‘털’에서 출발했죠.” 털이라니? 지난 2011년 그가 한국 브이에프엑스 1세대인 정성진 본부장과 강종익·김욱 수퍼바이저 등과 의기투합해 덱스터를 설립한 것은 ‘고릴라 털’ 때문이었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자 김 감독은 <미스터 고>에 도전하기로 했다.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에 문의한 결과, 2시간 동안 고릴라가 뛰노는 영화를 만들려면 브이에프엑스 기술에만 700~800억이 든다는 견적을 받았다. “한국 시장 사이즈로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규모였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그냥 우리가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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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225억짜리 ‘고릴라가 야구하는 영화’는 말 그대로 ‘폭망’했지만, 덱스터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기술’과 ‘경험’을 남겼다. “2년 동안 직원들과 털에만 집중해보니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는 걸 알았죠. 한 올 한 올 살아 숨 쉬는 털을 만드는 기술은 덱스터의 핵심 자산이 됐어요.” 투자제안이 쏟아졌고, 또 다른 길이 열렸다. 그렇게 7년이 흘러 덱스터는 50명에서 340명으로 규모가 커졌고, 아시아 최고 수준의 브이에프엑스 기술을 구현한 <신과함께>를 제작했다. <신과함께-인과연>을 본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허춘삼의 집에 놓인 ‘고릴라 인형’을 발견했을 터다. 김 감독은 “덱스터의 뿌리가 고릴라 링링에 있음을 드러낸 의도적 설정”이라고 했다.

<미스터 고> 이후 덱스터가 수주받은 작업은 대부분 호랑이나 늑대, 사자 등 ‘털’이 핵심이었다. “그 후 ‘털·불·물’을 제대로 구현할 기술개발에 집중했어요. 우리끼리 ‘한 글자짜리가 진짜 어렵다’고 하는데, 털·불·물은 움직임이 불규칙하고 비선형적이라 최고 단계의 기술이예요. 이것만 구현할 수 있다면 뭐든 만들 수 있어요.” 김 감독은 연구개발에 수익의 10% 이상을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는 젠(털을 구현하는 프로그램), 자비스(물을 구현하는 프로그램), 젠브(디지털 환경을 구현하는 프로그램) 등 80여개에 이르는 자체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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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쌓인 역량의 총 집합체가 바로 <신과함께> 속 칠지옥이다. 불과 용암이 타오르는 살인지옥, 물로 심판하는 나태지옥,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천륜지옥 등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지옥의 현실화에 관객은 열광했다. 90% 이상 씨지가 사용된 <신과함께>를 만들기 위해 11개로 세분화 된 파트에서 한 신당 70~80명이 동원됐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브이에프엑스 기술이 완성되는 걸까? 정지형 합성슈퍼바이저는 호랑이가 혜원맥을 향해 달려가는 신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대략적인 호랑이 컨셉과 움직임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요. 두번째로 나무, 풀, 바위 같은 사물 위치와 카메라 동선을 계산해 데이터화 하는 매치무브(match move)를 거치죠. 일종의 가상의 카메라 움직임을 만드는 거예요. 호랑이도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히고 관절이나 털을 심어주는 작업(리깅)을 해요. 앞서 만든 가상 카메라 동선에 맞춰 호랑이도 움직임을 주고요. 이렇게 완성된 호랑이를 실사로 찍은 배경에 합성하는 겁니다.” 그가 마우스를 클릭해 단계별로 이미 공정을 마친 결과물을 이어서 보여주자 호랑이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공정은 동물뿐 아니라 사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덱스터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108대의 카메라가 달린 ‘보디 스캔 장비’가 있는데, 이 장비로 사람을 스캔해 씨지에 이용한다. 108대의 카메라는 모두 동영상 촬영장비로 업그레이드 될 예정인데, 움직임까지 완벽하게 스캔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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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는 현재 기술력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90% 이상 따라잡았다고 자부한다. 정 슈퍼바이저는 “한국에서 제작된 대다수 영화의 씨지 작업이 덱스터에서 이뤄졌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대립군>, <1987>, <독전> 등이 덱스터 손을 거쳤다. <미스터 고> 때 2년 걸렸던 작업이 <신과함께-인과 연> 때 6개월로 단축된 것만 봐도 ‘기술의 진보’를 가늠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신과함께>의 쌍천만 달성은 덱스터 직원들에게 자긍심과 책임감을 심어줬다. 김보경 대리는 “예전엔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신과함게> 만든 회사 다닌다’는 한 마디면 된다. 직원 모두가 엔딩 크레디트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에 감격했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 쪽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젊은 친구들에게 덱스터가 꿈이자 모델이 될 수 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덱스터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각종 영화제에 브이알(VR) 콘텐츠를 선보이고 중국의 테마파크에도 공급하고 있다. 사운드 믹싱·보정 회사 라이브톤도 인수해 시너지도 노린다. “기획·제작·투자·배급까지 하는 종합 크리에이티브 회사로 키워 계속 아시아시장을 공략할 겁니다. 덱스터의 목표는 ‘아시아의 디즈니’입니다.” <신과함께>로 반환점을 돈 김용화 감독과 덱스터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쌍천만’ 달성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는 상상을 현실화 하는 일이죠. 그런데, 영화를 하다보니 상상도 못한 일이 현실이 되네요. 이게 바로 영화의 진짜 묘미 아닌가 싶어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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