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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기후를 바꾼 탄소문명…수렁에서 벗어날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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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곽노필의 미래창]

전세계가 겪고 있는 최악 폭염

에너지 효율제고·절약과 함께

의식주도 새 기후 맞게 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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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11년만에 폭염 최고 기록이 깨진 8월1일은 공교롭게도 `지구 용량 초과의 날'이었다. 지구 용량초과의 날이란, 그해 인류가 사용한 자연자원의 양이 지구가 1년 동안 회복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한 날을 뜻한다. 자원 수요를 모두 합친 생태발자국을 날짜로 환산해 나타낸 것이다. 생태발자국의 60%를 차지하는 게 바로 탄소발자국이다.

탄소는 대기중에 이산화탄소 형태로 존재하면서 지구의 열을 가둬놓는 온실가스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따라서 온난화 피해를 줄이려면 탄소 배출을 줄이면 된다. 문제는 그게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인류와 탄소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이다. 지구 역사에서 산소는 생명을 낳았고, 탄소는 문명을 낳았다. 산소가 생명 유지의 필수 요소라면, 탄소는 문명 발전의 원천이었다.

불의 발견에서부터 인류는 생존과 번영을 위한 에너지를 탄소에서 얻어냈다. 현대 문명의 근간인 화석연료 주성분이 바로 탄소다. 탄소는 수분을 제외하고, 살아 있는 유기체 질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구상 모든 화합물의 80%에 탄소가 들어가 있다. 인류 문명을 `탄소 문명'이라 부르는 이유다. 탄소는 대부분 화석연료 형태로 퇴적암층에 갇혀 있다. 대기중에선 이산화탄소 형태로 존재한다. 수십만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는 평온을 유지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땅속 탄소를 지상으로 불러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50년 사이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40% 넘게 높아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그 사이 지구 온도는 섭씨 1도가 올라갔다.

수은주는 한 눈금밖에 올라가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엄청나다. 무엇보다 여름이 길어졌다. 서울의 여름은 100년 사이 94일에서 142일로 한 달 이상 길어졌다. 한 해 3분의 1이 여름인 시대가 됐다. 21세기에 발생한 극한기상의 3분의 2는 인간이 유발하는 기후변화에 의해 생겨났거나 심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극한기상의 43%가 폭염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탄소문명의 이점은 이제 한계에 이른 것일까? 올 여름 전세계적 폭염은 이런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18개국 공동연구진은 2031~2080년 폭염 초과사망률이 지역별로 최고 20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 MIT 연구진은 중국 동북부 화베이평원과 페르시아만, 남아시아 등은 이번 세기말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의 폭염을 겪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금의 기상이변들은 이런 재앙의 예고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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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류는 폭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탄소문명에 손을 벌리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비근한 사례가 에어컨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전세계 에어컨 대수는 2050년까지 16억대에서 56억대로 3.5배 늘어날 전망이다. 30년간 1초당 10대씩 늘어나는 꼴이다. 보고서는 "이런 추세라면 2050년 전세계 에어컨 전기 소비량은 중국 전체 전기 소비량과 맞먹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전 세계 전기생산 증가분의 21%는 에어컨 수요 증가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가 에어컨을 부르고, 에어컨은 다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땅에서도 악순환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온 상승으로 땅속 박테리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이 미생물들은 죽은 잎과 식물을 먹고 살면서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내뿜는다. 화석연료가 토양을 덥히고, 더워진 토양이 다시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는 시스템이다. 1990년대 이후 미생물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급증(약 17%)했다고 한다. 화석연료가 자연이 구축한 탄소 배출-흡수의 균형 체계를 깨뜨린 결과다.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현재로선 탄소 없는 인간 문명은 생각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탄소 배출과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이다. 우선 모든 부문에서 에너지 효율이 높거나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덜 쓰고, 덜 먹고, 덜 버리는 생활에 대한 각성이 시급하다. 폭염에 취약한 사회경제적 약자층에겐 국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 있다. 산업화 이전 기후의 적응과정에서 굳어진 의식주 방식도 변화된 기후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건 어떨까? 몸을 옥죄는 정장 스타일, 난방 중심의 주거 구조, 육식을 선호하는 식문화, 획일적인 출퇴근 업무 방식,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긴 방학 등등 일상에서 당연시해온 것들이 여전히 최선인지 따져보자.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빅데이터 등 혁신기술들을 동원하면,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더워진 기후에 좀 더 안락하게 적응할 수 있는 대안들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변화에도 때가 있다. 사람들은 극심한 날씨를 겪었을 때 기후 변화 대응책을 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악몽과도 같은 여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아닐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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