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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동물복지·수의윤리 수업 안 들어도 수의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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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전국 수의대 정보공개청구 해보니

10곳 중 6곳 ‘동물복지’ 필수 아냐

‘수의윤리' 필수과목 아닌 곳은 5곳

선택 과목에도 넣지 않은 학교도…

국제수역사무국도 이수 권장

“수의사 업무 영역 늘어나는데

전공자 부족, 교육도 제자리걸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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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수의사가 될 수의대 학생들은 동물복지나 수의윤리를 생각하고 익힐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전국 10곳의 수의과대학 중에 일부 대학은 동물행동이나 복지, 수의윤리를 다루는 과목을 꼭 듣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의 동물복지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수의사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데, 정작 수의대는 이를 못 따라가는 실정이다.

애니멀피플은 전국 수의과대학 10곳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예과 2년과 본과 4년을 합친 학부 6년 과정 중에 동물복지와 윤리 관련한 수업 유무와 필수 이수 여부를 물었다.

10일 청구내용과 홈페이지에 공개된 과목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올해 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서울대, 제주대, 충북대 등 6개 수의과대학은 동물복지나 행동학 과목이 필수 이수과목이 아니었다. 경북대는 선택 과목에서도 동물복지 수업을 찾을 수 없었다. 수업명은 서로 달랐지만, 동물복지나 행동 관련 필수 이수학점은 1~4학점이었다.

수의윤리학이 필수 이수과목이 아니라고 답한 대학도 경상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 등 5곳이었다. 충남대는 선택 과목으로도 없었다. 선택과목인 제주대를 제외하면 모두 예과 과정이었고, 필수 이수학점은 1~5학점이었다. 보통 수의대생은 6년 동안 230~240학점을 들어야 졸업이 가능하다.

학교 쪽에서는 과목명을 따로 적어 구분하지 않았을 뿐, 수의대 교과과정 전반적으로 동물복지나 윤리와 관련한 내용을 다룬다고 해명했다. 강원대와 제주대 관계자는 “선택과목이지만 개설된 과목 수가 적어 거의 모든 학생이 듣는 필수과목과 같다”라고 덧붙였다. 충북대도 “관련 과목은 없지만 많은 과목에서 동물복지나 윤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한 국립대 수의대 교수도 “예과 과정 중에 동물복지나 수의윤리의 기본은 모두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북대와 충남대를 제외하면, 필수가 아니라도 선택과목으로 개설해두었다. 학점은 0.5~3학점이었다.

수의대 내부적으로도 동물복지와 수의윤리가 필수 이수과목이 아님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016년 12월 한국수의과대학협회와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이 실시한 ‘국제수역사무국(OIE·세계동물보건기구) 권장 수의사 졸업역량과 핵심 교과과정의 국내 적용방안 연구’도 이번 취재 결과와 비슷했다. 국제수역사무국이 정한 21개의 교과과정에는 동물복지나 동물행동학, 수의윤리 교과목이 포함돼있는데, 국내 일부 대학에서는 전공 필수과목이 아니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동물복지나 행동학이 필수가 아닌 학교는 강원, 서울, 제주, 충북대였다. 필수과목인 학교의 평균 학점은 3.67학점이었다. 수의윤리 과목이 필수가 아닌 학교는 경북, 경상, 전남, 전북, 충남, 충북대였다. 평균 학점이 3.75학점이었다. 특히 국제수역사무국에서는 수의윤리 교과목을 임상하는 본과에 이수하기를 권장했다. 하지만 국내 대학 중에 1개 대학만이 본과 과정이었다고도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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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참여한 남상섭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수의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국제 수준의 교육 기준을 만들어보고자 했다”며 “식품위생, 검역, 방역 등 사회적으로 수의사들이 담당하는 업무는 늘어가는데, 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학생들 요구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정부와 대학의) 파격적인 지원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수의사 양성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수의대 교과목은 수의사국가시험 과목과 대학별 교육 목표에 따라 대학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결국 동물복지나 윤리를 다루는 학문 자체가 발전되어야 교습할 교수진도 늘어나고, 연구도 활발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 소장인 한진수 수의대 교수는 “동물복지나 수의윤리 과목은 필수 이수과목이어야 한다. 특히 임상을 하는 본과생에게 수의윤리학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교과를 가르칠 교수가 부족하다 보니 관심 있는 교수들이 직접 공부한 뒤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은 상담심리학도 필수인 수의대가 있다. 국내 대학에는 동물복지 전공 교수도 없다”고 말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반려동물·실험동물·농장동물 등 동물별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 대학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과대학은 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뮌헨대학교 수의과대학 동물복지연구소나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수의과대학 동물복지교육국제센터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뮌헨대 동물복지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온 이혜원 잘키움행동치료동물병원장은 “독일에 있는 5개의 수의대는 서로 주요 전공이 다를 뿐 동물복지연구소나 동물복지 전공의 교수진을 다 두고 있다. 국가고시 과목에 동물행동·동물복지가 따로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내 수의대를 졸업한 후 에든버러대학교 수의대에서 유학 중인 최태규(37)씨는 “농장동물 복지와 생산성에 대해 고민했지만 한국 수의대나 축산대에서는 동물복지를 연구할 수 없어 유학을 왔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수의대 내 연구 기반이 마련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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