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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유전자원도 로열티… “원산국 허가 없으면 활용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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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의정서’ 18일부터 본격 시행

동아일보

2014년 10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및 제1차 나고야의정서 당사국회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국립생태원장)를 비롯한 당사국 대표들이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한 유전자원 활용 방안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IIS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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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서 판매되는 식용 수입산 식물을 연구에 활용하면 문제가 될까요?”
“출처를 하나로 특정하기 어려운 자원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7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나고야 의정서 설명회’ 현장. 회의장을 가득 메운 연구자들은 18일부터 국내에서도 본격 시행되는 ‘나고야 의정서’에 질문을 쏟아냈다. 지난해 비준서 발효 이후 1년의 유예 기간을 가졌지만 현장의 연구자들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나고야 의정서는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돼 2014년 10월 발효됐다.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이용 및 이익공유(ABS)가 골자다. 이에 따르면 비준국 간에는 특정 국가가 보유한 동식물은 물론이고 미생물과 세포주, 종자, DNA, 추출물 등 모든 유전자원과 전통지식을 비롯한 그 파생물을 원산국의 허가 없이 연구개발(R&D)에 쓸 수 없다.

자원을 이용해 얻은 금전적 이익과 논문, 기술 이전, 인재 교육 등의 비금전적 이익 역시 원산국과 공유해야 한다. 협약 사항을 어길 경우에는 양국의 법령에 따라 구금이나 벌금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명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전자원을 보전하고 자원 보유국의 주권을 인정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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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자원의 출처, 즉 원산국이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식물이라도 외래종일 경우엔 원산국 소유권자의 허가가 필요하다. 중개상을 통해 약품 원료를 구매하거나 자원은행에서 세포주를 분양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원을 어디서 제공받든 원산국이 허가한 용도 범위와 제3자 이전 가능 여부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안민호 ABS연구지원센터 연구원은 “식용 자원을 본래 사용 목적과 달리 연구에 쓰거나 학술연구용 자원을 화장품, 약품 등 제품 개발에 사용할 경우 국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이때는 별도의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 주체가 누군지도 점검해야 한다. 예컨대 국내 화장품 회사가 중국 현지 식물 추출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을 할 때도 중국 측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원 원산국인 중국 입장에선 이용 주체가 외국(한국)이기 때문이다. 내국인이 국내 자원을 활용할 때는 제약을 받지 않지만 공동 연구 등을 통해 외국인이나 재외 국민이 참여한다면 신고가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중국과 유럽연합(EU),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등 105개국이 나고야 의정서를 비준했다. 이 중 53개국이 조치 체계를 마련했다. 한국은 비준국이 된 지난해 8월 17일 국내 이행 법률인 ‘유전자원의 접근·이용 및 이익공유에 관한 법률(유전자원법)’을 시행했지만 신고 의무와 처벌 같은 실질적인 조항은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18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유전자원의 해외 의존율이 70%에 육박하는 ‘자원 빈국’인 한국으로서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우선 자원 수급 불안정, 로열티 상승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한국이 가장 많은 유전자원을 들여오고 있는 중국은 아직까진 법률 체계를 마련 중이지만 곧 로열티를 수익의 최대 10%까지 받을 방침이다. 인도는 1∼3%, 브라질은 1% 수준이다.

학술연구도 위축될 수 있다. 원산국이 자원 제공을 거부할 수도 있고 자원 이용 전 과정에서 관리·감독을 받는 만큼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장류 발달이나 뇌질환 연구에 쓰는 실험용 원숭이는 100%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장영효 ABS연구지원센터장은 “각종 절차도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 연구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 현장에 적합하지 않은 규정은 국내법에서라도 완화해야 한다”며 “원산국을 하나로 특정하거나 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자원의 경우 소유권 분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과학적으로 기원을 밝힐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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