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김은정씨는 다섯살 이전에 가족에 의해 장애인 시설 인강원에 보내져서 약 35년을 살았다. 2013년 인강원의 전형적인 시설범죄가 내부고발과 잇단 제보를 통해 ‘서울판 도가니’ 사건으로 폭로된 것을 계기로, 2016년 마흔의 나이에 탈시설의 기회가 주어졌다. 평생의 기억과 세상이 인강원뿐이던 그녀에게 다른 시설이 아닌 ‘시설 바깥’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녀는 우리를 향해 외친다.
“나 한다고 했어. 나간다고. 언제까지 시설에서 살 순 없잖아? 응? 너라면 안 그러겠어? 그건 싫었어. 전부터 그건 싫었어. 너라면 안 그러겠어? 응? 응?”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맘대로. 엄마는 왜 나가냐고 막 뭐라고 해. 그냥 거기서 살라고. 막 소리를 지르고. 그래서 내가 번호 지웠어.”
난생처음 이사를 하고 장애여성 친구 하나와 같이 사는 집, 자기만의 방 첫날 밤. “어색해. 집이 너무 커. 좀 무서워. 그래서 지금도 수진이랑 내 방에 같이 있어. 큰일 났다. 이렇게 큰 데서 어떻게 사냐, 앞으로?” 며칠 후 “나 점 뺐어. 염색도 했어. … 내 남자친구가 나더러 귀엽대. 나더러 아기래, 아기. 하하하. 같이 점심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볼링도 치고 그래. 결혼은 언제일지는 몰라. 일단은 돈을 모아야 해. … 섹스? 그런 거 한번도 안 해봤어.”
많은 질문에 “몰라”가 답이다. 아직 모를 수밖에 없다. 실제 모르기도 할 테고, 혼돈이나 판단유보일 수 있다. 몰라서 살 수 없을 거라고 겁주며 붙들던 사람들에게 전철도, 가게도, 길도, 돈 버는 것도, 집도, 결혼도 “물어보면 된다”고 우기고 나왔다.
국가는 복지니 재단이니 하면서 종교와 결탁해 장애인 시설을 만들었고, 가족은 다른 식구들을 위해 장애인을 시설에 보냈으며, 시민인 ‘나들’은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소위 ‘발전’을 위해, 속도와 효율과 편리를 위해 “그냥 거기서 살라고”만 했다.
그들 중 일부가 자유를 찾아 시설을 나왔다. ‘준비 안 된’ 비장애인의 세상에서, 어떤 장애인에게 탈시설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 리프트, 방, 거리에서,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사람이니까’ ‘생각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 나왔다.
여전히 ‘준비를 미루고 있는’ 시설 밖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존 자체가 자신과의 투쟁이자 세상과의 투쟁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배설하고, 씻고, 이동하기 위해 자신과 세상과 싸워야 한다.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에 맞서 싸우고 있고, 극장과 공중화장실 앞에서 싸우며, 지하철과 버스와 에스컬레이터를 멈춰 세워 붙들고 늘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구체적으로 비장애인인 우리의 속도와 효율에 저항하고 있다. 준비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며, 되돌아가지 않겠다며, 지금 당장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세상에 대해, 타인과 맺고 싶은 관계에 대해 남은 질문이 있는, 의문이 있는 분들에게 찬찬한 일독을 권한다. 책 제목은 <나, 함께 산다- 시설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의 이야기>(서중원 기록, 정택용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기획). 이상분, 유정우, 김범순, 신경수, 최영은, 김진석, 홍윤주, 정하상, 김은정, 남수진, 이종강 등 11명의 장애인이, 각자가 기억하는 시설과 탈시설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따져 묻는다. “너라면 안 그러겠어?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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