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얼마 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기무사 부대원들이 국방장관과 진실 공방을 벌인 이른바 ‘항명 사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내겐 다음날 기무사가 국회에 제출한 ‘장관 주재 간담회 동정’ 보고서도 못지않게 놀라운 일이었다. 국방부 담당 100기무부대장이 기무사령부에 보고한 4쪽짜리 보고서에는, 문제의 7월9일 장관이 부처 간부들에게 여러 현안에 대해 지시한 내용이 모두 요약돼 있다. 그걸 보자, 지휘계선상 까마득한 부하인 육군 대령이 상관인 장관의 맞은편에 태연히 앉아 장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시하고 있는 기괴한 그림이 선뜻 그려졌다.
기무사가 다시 개혁의 칼끝에 섰다. 조직의 30% 이상 감축, 동향관찰 및 존안자료 폐기, 통수 보좌 제한, 인적 청산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개혁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 군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근절하느냐다. 역사적으로 돌아봐도 국민의 지탄은 늘 기무사가 민간의 영역을 넘봤을 때 쏟아졌다.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나 1992년 3월 이지문 중위의 ‘부재자 투표 강요’ 폭로가 그랬고, 이번에도 기무사 개혁의 추동력은 사이버 댓글 공작, 세월호 민간인 사찰, 계엄문건 작성 등 정치 개입과 사찰 의혹이다.
그렇지만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의 책임을 온전히 기무사에만 묻는 게 온당한지는 의문이다. 기무사가 이런 불법을 별 주저 없이 반복하는 건 과거 1970~80년대 군사정부 시절부터 관행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1990년대 민주화 이후에도 근절되지 않은 건 이에 대한 역대 권력의 요구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돼야 공평할 것 같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무사에는 ‘통수 보좌’ 임무라는 게 있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원활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눈과 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무사의 존립 근거인 ‘국군기무사령부령’에는 규정되지 않은 임무지만, 권력의 요구에 따라 관행적으로 해온 업무다. 이는 기무사령관이 직속상관인 국방부 장관을 제치고 청와대에 직보하거나 대통령을 독대하는 형태로도 나타났다. 통수 보좌는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관심을 끌 만한 첩보나 정보 수집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필요하면 정책 대안까지 만들어 보고하게 된다. 또 대통령의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정보 수집의 대상이 군에서 민간으로 확대될 위험도 커진다. 기무사가 이명박 정부 때 댓글을 달고 정치보고서를 쓰고,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유족 등을 사찰하고 계엄문건을 작성한 건 우연이 아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기무사의 완전 해체·폐지를 요구한다. 사실 기무사를 없애지 않고 ‘해편’을 해서 존치하겠다는 청와대의 뜻이 오롯이 군의 쿠데타 방지에 있다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 군사반란이 있었던 60~70년대와 달리 민간 부문의 역량이 워낙 앞서, 군이 나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게다가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된 개방사회에서 쿠데타라니.
그래도 쿠데타를 걱정하지 않는 미국과 영국 등 많은 나라가 군 방첩기구를 두고 있는 사실을 보면, 기무사의 필요성을 꼭 부정할 일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권력이 나중에라도 기무사를 ‘통수 보좌’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유혹을 느끼는 순간 군의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해두고 싶다. 기무사의 해편에는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꼭 들어가야 한다.
suh@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