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화재·정부 허술한 대응에 '분노'
국토부, 대국민 입장문에 "자료 달라"
진단 뒤에 불나자 뒤늦게 담당자 급파
BMW는 올해만 32대째 화재가 발생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사태다. BMW가 부품 결함을 인정한 후에도, 국토교통부가 ‘운행 자제’를 권고한 후에도 불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길에 세워진 BMW만 봐도 불안할 정도다. 주차장에 붙은 ‘BMW 출입금지’ 경고문 역시 실재하는 공포다.
4일 오후 2시 15분께 목포시 옥암동 한 대형마트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2014년식 BMW 520d 승용차 엔진룸에 불이 나 연기가 치솟고 있다. [전남 목포소방서 제공=연합뉴스] |
분노의 불길은 차를 넘어 BMW의 ‘늑장 리콜’ 의혹과 국토부의 허술한 대응으로 번지고 있다. 우선 리콜 결정 한참전부터 화재가 시작됐기 때문에 BMW가 화재 원인을 알고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7년 초부터 BMW코리아가 위험 보고서를 독일 본사에 수차례 전달했는데 본사가 이를 받고도 근본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4월 환경부가 BMW 일부 차종의 EGR에 대해 리콜한 적이 있음에도 국토교통부가 제대로 살피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BMW승용차는 주차금지' (서울=연합뉴스) 2일 서울 시내 한 기계식 주차장에 BMW 승용차 주차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18.8.2 [독자 제공] see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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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와 국토부는 대체로 해명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한다. BMW 관계자는 "본사와 지속적으로 관련 사례들을 공유해왔지만, 화재의 경우 여러 가능성을 두고 면밀하게 조사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 후 최종적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리콜을 결정한 것"이라며 "본사가 보고를 묵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국토부도 “4월 환경부 리콜은 같은 EGR에 대한 것이긴 해도 배출가스와 관련한 리콜이라 이번 일과 직접 관련은 없다”며 “당시엔 EGR이 화재 원인인 걸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BMW 차량화재 사고 관련 국토부장관 담화문을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 자리에서 "BMW 차량의 사고원인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조사해 한 점 의혹 없이 소상하게 밝히겠다"며 해당차량 소유 국민들에게는 "빠른 시일 내 안전점검을 받고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운행을 자제해 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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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건 국토부다. 국토부는 사태가 이처럼 커지기 전에 미리 상황을 파악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가 달랐다 해도, 같은 정부 부처에서 이미 몇달 전 리콜을 진행했던 부품이다. 또한 리콜 결정 이후 브리핑에선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10개월이 걸린다"는 안이한 말로 분노를 키웠다. 게다가 사후 조치인 안전진단마저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 국토부는 5일 뒤늦게 불이 난 차량을 안전진단했다는 센터로 담당자를 ‘급파’해 실태조사를 했다. 역시 소비자의 공포를 부추기는 뒤늦은 사후 조치다.
국토부는 지난 3일 발표한 김현미 장관 명의의 입장문에서도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BMW에서도 경각심을 갖고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며 “조사에 필요한 관련 부품 및 기술자료 등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신속하게 제공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관리·감독과 인증, 규제 등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쥔 국토부가 이미 전국 각지에서 차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것도 대국민 입장문에서 BMW에 자료를 빠짐없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 수퍼 갑의 권한을 휘둘러 온 국토부가 자료조차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BMW가 협조를 제대로 안 해준다고 핑계를 대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전 11시 47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영동고속도로 강릉방면 104㎞ 지점에서 리콜(시정명령) 조치에 들어간 차종과 같은 모델인 BMW 520d 승용차에서 또 불이 났다 [강원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제공=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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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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