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서 중립 동남아공략 이어 '우방'과 관계 다지기 행보
핵합의 깨져 美와 대립중 이란에 접근, 美자극할 가능성
ARF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리용호 북한 외무상 |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참석 후 6일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외무상 리용호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표단이 싱가포르공화국과 이란이슬람공화국을 공식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서방과 아랍권이 이라크를 전폭 지원했던 가운데 고립된 이란에 북한이 무기를 제공한 것을 계기로 양국 우호 관계가 두터워졌다.
작년 8월에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연임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란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북한-이란 관계를 고려해볼 때 리용호 외무상이 이란을 찾는 것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지금 방문하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우선 리 외무상의 이란 행(行)은 함의가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란은 지난 5월 미국의 이란 핵합의(JCPOA) 탈퇴로 자신들에 대한 고강도 제재가 되살아날 위기 속에 외교적 입지 확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란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계기에 지난 2일 일본과 양자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됐다. 결국, 이란이 오랜 우방인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자국의 외교적 입지 확보에 도움된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북한으로서도 미국과의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이 진전이냐 정체냐의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자국 지지 세력을 다지는 차원에서 대이란 관계 강화에 나섰을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ARF를 계기로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해온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를 다진 데 이어 우방인 이란과도 관계를 강화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어 보인다.
북미 간에 비핵화와 대북체제안전보장을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 협상이 사실상 교착 상황인 가운데 북한이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이란과 관계를 강화하려 하는 것은 결국 북한식 '마이웨이' 외교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북한과 이란이 핵·미사일 개발을 상호 지원해왔다는 의혹이 서방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온 만큼 이번 리 외무상의 이란 방문도 핵·미사일 기술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 조야의 대북·대 이란 강경파를 자극할 소지도 있다.
그런 점을 모르지 않을 북한이 리 외무상을 이란으로 파견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되, 거기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 만큼 미국은 리 외무상의 이란 방문을 '어깃장'으로 여길 수 있다.
리 외무상의 방문을 계기로 이란 측은 미국이 자신들과의 핵 합의에서 탈퇴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미국을 믿지말라'는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보여 트럼프 미 행정부로선 달가울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트럼프 미 행정부로선 북미 협상이 좌초할 경우 북한과 이란이 연대해 반미 여론전을 펼 것이라는 의심도 할 만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5일 "리 외무상의 이란행은 북한 나름의 '외교 다변화' 시도이겠으나 미국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주는 터에 북한은 이란, 쿠바 등과의 '반미 네트워크'를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이란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 내부에서 북핵 해결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미국으로선 리 외무상의 이란 방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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