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기자 |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여·45)는 최근 위층 주민과 크게 다퉜다. 얼마 전부터 베란다에 널어 놓은 옷에 얼룩이 생겨 알아보니 위층 에어컨 실외기 배수관에서 나온 응축수 때문이었다. 위층 주민이 에어컨 실외기 배관을 실내 배수구가 아닌 밖으로 그냥 빼놓으면서 물이 실내로 튄 것이다.
#서울 서초구에 27년 된 아파트에 사는 이모씨(여·35)는 새벽마다 위층 에어컨 실외기 소리에 잠을 깬다. 최근 연이은 불볕더위로 새벽에도 에어컨을 틀면서 소음은 더 심해졌다. 이씨는 “5살 된 아이도 밤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며 “더운데 에어컨을 틀지 말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올여름 최악의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에어컨 실외기에서 발생하는 응축수와 소음·진동 문제가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5일 서울시민들의 민원을 받는 ‘서울특별시 응답소’에 따르면 매년 7월 ‘에어컨 실외기’ 관련 민원은 2014년 289건, 2015년 247년, 2016년 283건 2017년 304건, 2018년 254건 등 5년간 총 1377건에 달한다.
신혜선 서울특별시 시민소통 기획관은 “구청별로 따로 에어컨 실외기 민원을 받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포함하면 민원 건수는 더 많을 것”이라며 “실제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에어컨 실외기 민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컨 실외기 민원은 크게 응축수 누수 문제와 소음·진동 문제로 나뉜다. 두 문제 모두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어 관리사무소가 주민들에게 안내하거나 시민들 스스로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먼저 에어컨 실외기 설치 법령에 실외기 배수관 관련 내용이 없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에어컨 실외기는 도로 바닥에서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하고 나오는 열기가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않으면 된다.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김모씨(53)는 “응축수에 맞는 행인이 생기고 주민들도 민원을 계속 제기하고 있지만 배수관의 위치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주민들에게 내부로 응축수를 흘려보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외기 소음도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 왔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서울 강동구 빌라에 사는 임모씨(여·26)는 옆 건물 에어컨 실외기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임씨는 “옆 건물이라 어떻게 항의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며 “피해 상황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소음·진동관리법의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에어컨 실외기 소음은 층간소음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층간소음의 범위는 입주자 또는 사용자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다. 즉 주민이 직접 실내에서 내는 소음과 텔레비전 등 음향기기를 사용한 소음만 층간소음으로 본다.
한국환경공단 이웃사이센터 한 관계자는 “에어컨 실외기 소음이 크다고 에어컨을 못 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적극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나 빌라 등 공동주택의 에어컨 실외기 문제는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관리규약을 만들어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어컨 실외기 설치 단계부터 관련 규정을 만드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관리소장 이모씨(55)는 “실외기 설치 때 수평을 맞추고 아래층으로 진동이 전해지지 않게 바닥에 고무판을 깔아야 한다”며 “설치 규정을 강제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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