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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신작리뷰]혐오와 싸우는 전직 야쿠자…영화 <카운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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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해왔다. 가까이는 배우자나 친지, 크게는 다른 집단·민족·종교 등. 인류사에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에겐 차별과 혐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득세력은 내부결속을 다지거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세력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차별과 혐오를 활용해왔다.

한국에서는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표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틀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혐오’하는 시대가 됐다. 젊은 층에서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의 ‘극혐’은 ‘싫다’는 단어보다 더 자주 사용되고, 얼굴을 맞대지 않는 온라인에서는 자신과 다른 세대·성별·계층·정치성향을 혐오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혐오의 대상은 난민, 성소수자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공식석상에서 혐오 발언을 버젓이 하는 것을 보면 혐오가 일상화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혐오를 나타내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혐오는 성희롱 등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표현하는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폭력이 된다. 혐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회는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와 다름없다. <카운터스>는 일본 전역으로 일어나는 혐한 시위 등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에 맞서 ‘혐오표현금지법’을 이끌어낸 이들의 활약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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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한국 여자를 보면 돌을 던지거나, 성폭행을 해도 무방합니다.”

혐한 집회·시위가 극에 달했던 2013년 일본 도쿄 시내 한복판 신오쿠보 한인타운에서 시위 참가자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진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라는 이유로 혐한 시위자들을 보호하고, 시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을 저지한다. 도로 한 켠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인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일본에서 18년간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영상물 제작 등의 일을 한 감독 이일하(44)는 다소 감상적이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경쾌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편집으로 속도감 있게 전한다.

이야기는 인물 위주로 전개되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이는 전직 야쿠자인 다카하시다. 혐한 반대시위에 나선 한인타운 단골가게 주인 할머니의 눈물을 우연히 본 다카하시는 야쿠자를 그만두고 일본 내 혐한 세력에 맞서는 시민연대 ‘카운터스’에 가입한다. 스스로 보수라 말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하는 다카하시지만 혐한 시위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제압할 그룹 ‘오토코구미(男組)’를 결성한다. 거친 말과 행동 이면에 숨겨진 그의 따뜻한 마음에 작가·음악가·배달부·마트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카운터스에 동참한다.

다카하시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은 사쿠라이다. 극우 인터넷 게시판 논객으로 활동하다 유명세를 얻은 사쿠라이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을 만들어 혐한 시위를 주도한다. 그는 혐오와 차별은 인간의 본성이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사쿠라이는 득표 11만표로 5위를 차지해 정당을 창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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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토코구미 이야기는 2016년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 감독이 저술한 동명의 책과 같은 해 방송된 3·1절 특집 MBC 다큐스페셜 <일본의 또 다른 얼굴, 카운터스 행동대>를 통해서다. 이 감독은 “방송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해 주로 소프트한 부분을 담은 반면 영화에서는 진짜 말하고 싶은 부분을 담았다”며 “시점상으로도 방송 당시에는 혐오표현금지법안을 논의하는 시점이었다. 영화에는 지난 2년간의 노력과 변화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혐오 발언을 금지하는 내용의 혐오표현금지법은 2016년 6월 시행됐다.

카운터스 소속인 일본 민주당 참의원 아리타는 재특회 등 극우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일 한인에게 전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각종 위협을 느끼며 살아 왔다”는 재일 한인의 말에 아리타는 법안을 발의하고 주도하기로 마음먹는다. 비록 법안에는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처벌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혐오 시위를 저지하는 효과는 있었다. 법 시행 전에는 재특회나 혐오단체가 지방자치단체에 시설 대여를 요청하면 지자체에서 어쩔 수 없이 빌려줘야 했지만 이제는 거부할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또 경찰도 혐오 발언을 하는 집회·시위를 중지시킬 수 있게 됐다.

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도 ‘당신 안에 혐오가 있는지 질문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난민이나 외국노동자 등 한국 사회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한국도 점점 국제화되고 외국인이 더 많이 살게 될 것이므로 차별과 혐오를 지금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쿠자 출신 다카하시와 그의 의형제로 오토코구미 행동대장인 기모토의 거친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진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활극을 보는 듯하다. 이 영화는 지난해 DMZ국제다큐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편집본에는 영화제 당시에는 없던 다소 충격적인 영상도 담겨 있어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을 권한다. 99분, 15세 이상 관람가.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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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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