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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청와대 대변인 '대통령의 입' 넘어 '공격수'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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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취임 반년
브리핑 정례화・실명화로 투명한 브리핑
부적절하거나 격한 비유로 구설
“靑대변인 표현은 정확해야”

“납치한 무장단체에 대한 정보라면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지난 2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리비아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우리 국민의 구출 대책에 대해 발표한 논평의 한 대목이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4년 김선일씨 피랍사건, 2007년 샘물교회 피랍사건 등을 포함해, 해외로 나간 우리 국민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온 정부 논평에 이처럼 문학적 수사가 쓰인 적은 없었다. 피해자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는데, ‘미사여구’를 쓰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대변인의 말과 글에서 사회운동의 맨 앞에서 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읽힌다’는 우려와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이 함께 나온다.

◇대변인 질문에 실명으로 답변, 격한 표현은 논란 중
김 대변인은 지난 2월 2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대변인직을 수행한 반년동안 김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을 정례화하고 실명화하는 성과를 쌓았다.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언론 앞에 나서서 대통령과 청와대에게 던져지는 질문을 받고 답했다. 특히 이같은 문답은 지난 6월 1일부터 김 대변인의 실명으로 공개됐다. 김 대변인 취임전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청와대의 화자는 거의 대부분 ‘청와대 관계자’였고, 그나마도 비정기적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김 대변인은 그러나 브리핑 과정에서 역대 청와대 대변인이 잘 쓰지 않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해 문제를 낳았다. 그는 비유법을 즐겨썼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차례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

그는 지난 3월 14일 북한의 비핵화와 그에 따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 해법을 설명하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나가지 않겠냐”라고 했다가, 같은 달 30일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을 바꿨다. 복잡한 한반도 문제 해법을 쉽게 비유하려다 생긴 사고였다.

지난 4월 8일에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피감기관 지원 외유(外遊)성 출장 의혹이 나오자 “실패한 로비”라고 비유했다가 부적절하다며 발언을 취소했다. 이어 이 발언이 기사로 나오자 “‘기사 쓸 게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날을 세웠다.

김 대변인의 어휘 선택은 파격이다. 그는 여권 지지층이나 대통령의 관심 대상에 대해 설명할 때는 화려한 단어를 동원한다. 정서적 거리가 매우 가까운 사이에 쓰는 말들도 피하지 않는다. 이번 리비아 피랍 사건 논평도 ‘납치된 우리 국민에 대한 문 대통령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고였다.

그는 지난 3월 30일 충남 아산에서 순직한 소방관 추모 논평에서 “국민들은 전화기의 119를 누를 때 언제 어디서나 소방관들이 달려올 거라 믿는다.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는 신뢰다. 그 부름에 보답하고자 소방관들은 365일 24시간 잠들지 못한다”며 “이번에도 세 분 소방관은 혹여 사람들이 다칠까 쏜살같이 달려갔다가 변을 당하고 만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세 분 다 여성이다. 서른 살, 스물아홉 살, 스물세 살이라고한다. 인생의 봄날이었기에 슬픔은 더 가눌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달 20일 한 단체가 ‘문 대통령 노벨상 추진위’를 구성하려하자 내놓은 논평에서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고는 하나 이제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가야할 길이 멀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며 “말은 삼가고 몸가짐은 무거워야 할 때”라고 했다.

반면 비판자 등 대통령의 정치적 대척점에 선 이들에 대해 내는 입장에 쓰이는 표현은 건조함을 넘어 ‘공격적’이다.

김 대변인은 지난 4월 18일 드루킹 사건 관련 논평에서 “어지러운 말들이 춤추고 있지만 사건의 본질은 간단하다”며 “누군가 매크로를 이용한 불법행위를 했고, 정부여당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봄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비난에 흔들리지 않겠다”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적 과업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겠다”고 했다.

지난 4월 4일 중앙일보의 ‘문 코드 등쌀에 외교안보 박사들 짐싼다’는 보도에는 “사실관계를 심각하게 뒤틀어 쓴 기사”라며 “근거가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다 기사를 구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처럼 모욕적인 딱지를 붙였다”며 “해당 보도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을 경우 법적인 절차를 밟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최근에는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는 ‘공격수’ 역할을 맡아 야당의 반발을 샀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일 이 문건을 공개한 김 대변인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군 내부 기밀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일련의 구조에 대해 정권차원에서 의도된 정치적 기획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 대변인은 “계엄령 문건 언론 공개는 문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인가, 공격수인가
이같은 김 대변인의 행보는 대통령의 말을 정확히 전하는 전통적 대변인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대변인들은 자신들의 기본임무에 대해 ‘달변가’ 대통령의 발언을 잘 정리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노 전 대통령에 비해 말을 아끼는 문 대통령이 김 대변인에게 같은 임무를 강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김 대변인과의 오찬에서 “과거 참여정부때 노무현 대통령을 잘 모르는 분이 어떤 직책을 맡아서 혼선이 있고 논란이 된 경우가 있었다”며 “그런 기대를 갖고 김 대변인을 임명했다”고 했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말진(현장) 기자가 돼 궁금한 점을 여쭤보면서 귀찮게 하겠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와서 물어보고 답을 듣는게 가장 좋다. 언제든 오라”고 답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이런 김 대변인의 스타일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본업’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비대화를 우려한 책 ‘청와대 정부’의 저자 박상훈 박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변인의 표현은) 가능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것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의 입이라고 볼 수 있는 대변인의 말이 시나 문학이 되는 것, 말로 주목받고자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대변인은 대통령이 직접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어 중간에서 언론에 정제된 정보와 판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대변인의 역할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한을 여당, 야당, 시민사회 등 대통령의 정책 행사의 수용자에게 효과적으로 오해없이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아래는 김 대변인이 지난 2일 발표한‘리비아 피랍 관련 논평’ 전문
리비아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이 한 달이 다 돼서야 생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얼굴색은 거칠었고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여 참으로 다행입니다.
“나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의 정신적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말에서는 오랜 기간 거친 모래바람을 맞아가며 가족을 지탱해온 아버지의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총부리 앞에서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내던져진 지아비와 아버지를 보고 있을 가족들에게는 무슨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는 "대통령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내 조국은 한국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조국과 그의 대통령은 결코 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납치된 첫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출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안전과 귀환을 위해 리비아 정부 및 필리핀 미국 등 우방국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를 납치한 무장단체에 대한 정보라면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덴만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청해부대는 수에즈 운하를 거쳐 리비아 근해로 급파돼 현지 상황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몇 모금의 물로 축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직은 그의 갈증을, 국민 여러분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을 믿고 그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마음을 모아주시면 한줄기 소나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박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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