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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원희복의 인물탐구]단식 전교조 위원장 조창익 “교육개혁 골든타임이 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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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단식 전교조 위원장 조창익 “교육개혁 골든타임이 죽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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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중복. 섭씨 36도가 넘는 이날 뜨거운 아스팔트 옆에서 단식하는 사람이 있다. 7월 16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60)이다. 이 날씨에 단식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목숨을 건’ 행위다. 기자가 노상에서 단식투쟁하는 사람을 취재한 것은 2014년 문재인 당시 의원, 2016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2016년 이석태 당시 세월호 특조위원장이다. 세 사람 모두 6~8월 더위와 소음 고통을 호소했다.

촛불정부가 들어선 2018년 다시 한여름 노상단식을 취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조 위원장은 지난해 11~12월 한겨울에도 단식을 했다. 그는 “그때는 소금에 대한 느낌이 없었다”면서 “땀이 많이 나니 어지러움도 더 빨리 와 더 힘들다”고 말했다. 더울 때 단식투쟁과 추울 때 단식투쟁, 어떤 때가 더 힘드냐는 괜한 아니 ‘잔인한’ 질문에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가 단식을 할 때 교사 40명과 노조 중앙집행위원 25명이 삭발투쟁을 벌였고, 조합원 2000여명이 연가투쟁을 벌였다. 방학인 요즘 각 지부별로 교사 20~30명이 그와 함께 24시간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6만 조합원의 요구는 ‘원상복귀’

전교조의 6만 조합원이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바로 ‘원상복귀’다. 박근혜 정권은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전교조에 대해 2013년 10월 24일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그 근거는 노태우 정권 시절 삽입된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으로, 그동안 한 번도 적용되지 않은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헌법에 명시된 노조 설립의 자유를 이렇게 손쉽게 무너뜨리는 조항에 대해 전교조는 헌재에 위헌투쟁도 벌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시절 헌재는 ‘적용에 신중하라’고만 판단했다.

전교조는 노동부 적폐청산 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결정을 내심 기대했다. 8월 1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를 즉시 직권 취소할 것’과 문제의 ‘제9조 2항의 조기 삭제를 통한 해결’을 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법 조항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즉시 취소 권고를 회피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이 자유한국당 소속인 상황에서 이런 정부의 태도는 전교조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의미라고 판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전교조 합법화를 약속했다.

“2017년 1월 19일 당시 문 후보는 ‘전교조 창립 때 변론하는 등 전교조 역사를 다 안다. 나에게 명예 조합원 자격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집권하면 전교조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 우리가 요구했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문제도 한 시간 넘게 같이 얘기했다. 문 대통령은 전교조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8월 1일 정부의 태도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청와대가 전교조 합법화를 주저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행정부는 최소한의 부담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 전교조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된 측면이 있어서 그렇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틈만 나면 전교조를 민주노총과 함께 ‘주사파’라고 종북몰이에 끼워넣었다. 전교조는 종북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는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수·수구세력의 정치적 공세를 두려워하고 있다.”

촛불 정부가 ‘촛불의 큰 공헌자’ 홀대

김영한 전 수석(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의 업무일지나,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발굴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문건, 그리고 최근 연이어 공개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문건에는 ‘BH(청와대)의 관심사항은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두 단체가 박근혜 정권에서 가장 탄압받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러나 다른 적폐, 이를테면 국정원 대선 개입, 외교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상문제, 문화부의 블랙리스트, 교육부 역사왜곡 등의 문제는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지만 전교조와 진보당 두 문제 해결에는 매우 미온적이다. 진보당이 청와대 앞과 대법원 앞을 오가며 천막농성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 위원장의 해석처럼 청와대가 여전히 야권의 종북몰이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가. 문 대통령이 4·27 판문점 선언까지 이끌어 낸 마당에 그렇게 종북몰이에 ‘겁’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가장 심각한 적폐는 바로 종북몰이가 낳은 적폐가 아닐까. 그것을 풀지 않고 적폐청산을 말할 수 있을까. 전교조 문제는 단순한 노동조합 합법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 위원장은 단식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생수로 적시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에서 교육개혁이 생략돼 있다. 문 대통령이 우리 교육을 개혁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교육개혁의 주요 동력인 전교조 문제에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현장교육을 살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에너지를 재조직화하는 문제의식이 희박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교육부와 전교조의 이런 갈등은 낭비적일 뿐만 아니라 개혁의 골든타임을 소모하고 있다. 매우 심각하고 안타까운 문제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교육관료에게 휘둘려 개혁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것 역시 전교조 법외노조와 무관치 않다. 전교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김상곤 체제의 파트너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힘이 실리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교육관료들은 이명박·박근혜 시절 그 사람들이다. 김 교육부 장관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실제 개혁의지를 추동할 세력이 현장에 없다.”

-2013년 박근혜 정권에서 9명의 해직 조합원과 같이하기 위해 법외노조를 감수했다. 법외노조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교육개혁의 주요 주체로 활동할 기회가 봉쇄된 점이다. 교육부와 단체협약 기능이 상실되고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가 차단돼 있다. 때문에 교육현장에는 참교육이 지향하는 실천과 변화가 봉쇄돼 있다. 특히 34명의 해직교사 문제가 있고, 교사 20여명은 아직도 직위해제 중이다.”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상식이고, 조합원이 공무원이라는 특별권력관계론(공무원은 권력자에 포괄적으로 지배돼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론)은 이미 1960년대 완전히 폐기된 행정학 이론 아닌가.

“(하~하~) 이미 폐기된 이론인데 공무원 노조와 교사들에게는 수십 년간 유용하게 작동돼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특징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시대에 통용됐던 낡은 이론을 모두 폐기하고 공무원 노조와 전교조를 합법화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우리 행정 수준을 50~8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전교조가 내심 더 ‘분노’하는 것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큰 공헌자’인 자신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자체 홈페이지에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1000만 촛불 시민광장 한가운데 휘날리는 당당하고 자랑스런 깃발’이라고 전교조가 촛불혁명에 앞장섰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때 전교조가 촛불에 앞장선 이유에 대해 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때를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교사들이 촛불에 적극 나선 것은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사회 변화의 정직한 촉진자라는 전교조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반민중적 정책으로 일관했다. 자본편향으로 인한 극도의 양극화로 노동자·농민 등 민중이 파탄상태로 떨어졌다. 특히 교육문제는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교학사로 지칭되는 친일독재 교과서를 단 1개 학교도 채택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정권의 미움을 샀다. 전국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일제고사라는 반교육적 제도에 반대했고, 세월호 문제가 이어지면서 박근혜 정권과 전면적 투쟁에 나선 것이다.”

전교조 활동으로 두 번이나 해직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출신으로 촛불혁명을 주도했던 당시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은 “역사왜곡 교과서가 전교조 정신을 유린하고, 노동개악은 전교조의 몸을 괴롭힌 것이라면 세월호 참사는 선생님 가슴에 칼을 꽂은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조 위원장은 “매우 훌륭한 비유”라고 공감했다. 전교조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대결은 집요하면서도 처절했다. 2011년 5월 원세훈 국정원장은 ‘전교조 와해 특수공작 계획 보고’라는 계획을 세웠다. 전교조가 이적단체라는 내부 폭로를 유도해 공안몰이로 와해시키려는 공작이었다. 2013년 2월 국정원은 전교조 교사모임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4명을 기소했다. 전교조는 이를 공안조작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원장을 고소했다. 조 위원장은 “통일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교단에서 쫓겨난 이 사건은 지금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며 “반면 우리가 국정원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모두 고발했지만 단 하나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1959년 섬진강가인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증조부가 면암 최익현 선생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다. 면암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의 부당함을 도끼를 들고 고종께 상소했던 ‘지부상소(持斧上疏·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도끼로 목을 치라)’로 유명하다. 면암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던 인사의 증손자가 142년 후 바로 그 경복궁 옆(청와대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은 시대적 아이러니다. 조 위원장은 어려서 서당에 다녔다. 그는 “드러낼 것은 아니지만 일제에 저항했던 선조를 귀감으로 알고 살아왔다”면서 “서당에서 선비정신과 저항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1978년 전북대 지리교육과에 입학, 1982년 전남 땅끝마을인 해남 송지중학교 사회 선생님으로 처음 교단에 섰다. 군복무(카투사)를 마치고 1984년 학교에 복직한 그는 대한교련(현 교원단체연합회) 탈퇴운동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적 불의와 맞서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국정감사에서 교련이 회비로 문교부 장관 뇌물을 구입한 것이 드러나 전국적 교련 탈퇴운동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전교조 전신인 전교협 활동을 하다 결국 5년간 해직됐다. 1994년 해남 화산중학교에 복직한 그는 전교조 전남지부 정책실장, 지회장 등으로 활동하다 2016년 전교조 법외노조 저지투쟁으로 다시 해직됐다. 그 해 12월 그는 제18대 전교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8월 1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한 정부의 태도에 그는 허탈하다 못해 분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옥탑방 체험을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선풍기를 선물해 화제가 됐다. 촛불혁명 주역의 한 사람인 전교조 위원장이 목숨을 건 단식에 촛불정부가 준 선물이 이것인가. 천막농성장에서 지은 ‘애효자로(哀孝子路·효자로에서 슬퍼하다)’라는 제목의 한시에 그의 심경이 녹아 있다. 그는 “정식으로 한시를 배우지 않고 흉내내는 수준”이라고 겸손해 했다.

靑瓦臺前孝子路(청와대전효자로)/此盛木爲誰靑秀(차성목위수청수)/燃霧北岳默不答(연무북악묵부답)/牆外民草連絶叫(장외민초연절규)/今立長牲克暴炎(금립장생극폭염)/越牆雙鳩無心步(월장쌍구무심보)/我宿願回復常識(아숙원회복상식)/追法外海恨至高(추법외회한지고)

청와대 앞 효자로/ 저 무성한 나무는 누구를 위해 저리도 푸른가/ 안개에 싸인 북악은 말이 없고/ 담장밖 민초들 절규는 끝없이 이어지네/ 오늘도 장승처럼 서서 폭염을 이기는데/ 담장 넘어온 한 쌍의 비둘기 무심히 거닐고만 있네/ 내 다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식을 회복하는 것인데/ 아직도 법밖으로 내치기만 하니 한스럽기 그지없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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