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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박수찬의 軍] 청일전쟁 124년 후, 한반도 둘러싼 각축전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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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24년 전인 1894년 7~8월, 한반도의 여름은 뜨겁고 위태로운 기운을 거침없이 뿜어냈다. 동아시아 세계 질서의 중심이었던 청나라와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했다. 이것이 바로 청일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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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당시 랴오둥반도 뤼순 요새를 지키는 청나라 군대를 공격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그린 판화. 위키피디아


청일전쟁이 터진 지 120여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여전히 위태롭다.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으로 한반도 화해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군사력 증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진척되지 않으면서 남북 관계도 정체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한반도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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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북양함대의 주력 전함이었던 진원. 청일전쟁 전에는 동아시아 최강 함정이었으나 전후 일본에 나포되어 일본 해군 군함으로 쓰였다. 게티이미지


◆청일전쟁, 한반도 운명을 외세가 결정한 계기였다

1839년 1차 아편전쟁 이후 거듭된 서양 열강의 침략에 시달리던 청나라는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한반도와 오키나와, 대만 등으로 영향력 확대를 꾀하자 양무운동을 통해 동아시아의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양무운동의 결과물로 신식 군대인 북양군과 북양함대를 갖춘 청나라는 한반도를 장악해 일본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려 했고,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해 한반도로 나아가려 했다.

그 결과가 1894~1895년 청일전쟁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쟁이지만 조선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됐다. 아산, 평양 등지에서 청일 양국 군대가 충돌해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조선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일본군은 경복궁을 공격해 친일 내각을 수립했고, 조선군은 청나라와 일본 양측에 모두 참가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웃픈’ 상황이 연출됐다.

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종결된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판도를 극적으로 바꾸었다.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수천년 동안 아시아 세계를 이끌어온 중화사상이 무너지면서 동아시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반면 서양 열강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적극 도입했던 일본은 대만을 식민지로 삼고,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려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에 압력을 넣으면서 일본의 기세가 주춤해지자 조선에서는 일본을 견제하려는 세력과 친일파, 열강들 간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 결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을미의병, 아관파천 등 외세가 개입한 정치적 격변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최근 방송중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도 이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한반도는 계속 외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1904~1905년 러일전쟁 당시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했으나 러시아와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였다. 1905년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한데 이어 1910년 한반도를 강점해버렸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한반도가 분단됐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반도는 자체적으로 운명을 뒤바꿀 능력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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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군 육전대 장병들이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 해상에 떠있는 군함에서 미국 해군 장병들과 함께 함 내 수색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주변국이 걸어갈 때, 우리는 뛰어야 살아남는다

중국은 청일전쟁의 굴욕적 패배를 상기시키며 군사력 증강과 한반도 영향력 증대를 지속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월 12일 산둥성 웨이하이 소재 북양함대 주둔지와 포대 유적지, 일본군과 영국군이 수년간 점령했던 류궁도, 청일전쟁 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항상 경종을 울리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13억 중국인은 분발해 강성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청일전쟁 패배로 동아시아 해양패권을 일본에 넘겨준 것이 20세기 중국의 수난시대로 이어졌다는 측면에서 시 주석은 해군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부터 중국 해군에 배치되고 있는 052D형 방공 구축함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 의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과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는 052D 형 구축함은 배수량이 7200t급에 달하며 4면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64기의 수직발사관을 갖춰 방공, 대함, 대잠수함 공격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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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군의 052D급 방공구축함. 중국판 이지스함이라 불리면서 항공모함을 적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일본 방위성 제공


2012년 러시아제 항공모함 바리야그를 개조한 항모 랴오닝호(5만5000t급)를 취역시킨 중국은 이를 개량한 신형 항모 산둥호(6만5000t급)를 지난해 7월 진수했다. 중국은 상하이와 다롄 조선소에서 항모를 추가 건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2020년대에는 핵항공모함을 포함한 4척 이상의 항모가 중국 해군에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 8만t급으로 알려진 새 항모는 뱃머리를 높여 항공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하는 스키 점프 방식 대신 전자식 사출장치(EMALS)를 적용해 기존 증기 사출장치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전투기를 발진시킬 수 있다. 항모에 탑재할 전투기도 사고가 잦은 J-15 전투기 대신 FC-31 스텔스 전투기로 교체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 역시 해군력 증강을 지속하고 있다. 방위성은 30일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7번째 이지스 구축함 마야를 진수했다. 해상자위대 아타고급 이지스함보다 배수량이 450t이 늘어난 8200t급인 마야는 SM-3 블록2A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을 탑재했다. 표적 정보를 군함, 항공기와 실시간으로 교환해 공동으로 교전할 수 있다.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지면서 북한이나 중국 미사일도 미국 해군과의 실시간 정보공유를 통해 요격할 수 있다. 해상자위대는 8번째 이지스 구축함을 2020년에 배치해 이지스 구축함 8척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미국은 지난 5월 71년 역사의 태평양사령부 이름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대중(對中) 견제 파트너인 일본에 더해 인도와 호주를 포함해 중국을 더 강하게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중국은 육상과 해상에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앞세워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남중국해 섬과 암초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면서 군용 비행장과 레이더 기지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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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9차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 참석한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소장이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육군 중장과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군사적 움직임과 더불어 정치적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올해 들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났다. 러시아도 다음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서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은 북한의 6.25 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대북 제재를 지속하면서 북한 비핵화 초기 검증 단계에서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재팬 패싱’ 차단에 고심하고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1894년처럼 외세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일이 재현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 비핵화 등의 분야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재촉하고 있으나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종전선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해야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으로 대북 군사옵션이 사실상 무력화될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과 우려를 반영한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함께 진전시킨다면 한반도 정세를 제한적이나마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다. 여기에 주변국 군사력 증강에 대응해 해군력과 공군력,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늘려 주변국에 힘을 과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4.27 판문점선언으로 9년만에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확보할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경우 한반도 평화는 그만큼 더 멀어질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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