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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교사가 말한다] “학폭위,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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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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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경미한 학교폭력은 당사자가 화해했을 시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한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2일 열린 제5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다. 교육현장은 달라진 것이 있을까. 전혀 없다. 여전히 단 한 차례의 사소한 말로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리고 처벌이 이루어진다.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을 학폭위에 할애한다. 부모들도 끝없는 소송전을 벌인다.

현장 교사들이 바라본 학폭위의 현실은 어떨까. <주간경향>은 지난 9일 경향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학폭위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고광삼(서울 경신중학교)·이상우(경기 남수원초등학교) 교사와 함께 현장에서 바라본 학폭위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학폭위 제도가 본격적으로 전국에서 시행된 지 올해로 만 6년이 됐지만 곳곳에서 잡음이 들려온다.



경향신문

고광삼(이하 ‘고’)
“학폭위가 처음 만들어진 건 2003년도였지만 있어도 거의 연 적이 없었다. 지침이 마련되고 학폭위가 강화된 것은 2012년 3월부터였다. 그 전 해에 대구에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그 이후 아주 굉장히 강화된 학폭법이 만들어지고, 학폭위가 강화됐다. 한마디로 극약처방을 한 것이다. 거기다 가장 낮은 수준의 처벌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게 했다. 당시에는 충분히 그렇게 강력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게 현장에서 시행되고 몇 년이 지나면서 다양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우(이하 ‘이’) “학교 자체의 책임도 많다. 학교는 늘 조용하기를 바란다. 특히 관리자들은 학교에서 큰소리가 나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보니 모든 업무를 담임교사 및 (학폭위) 책임교사가 떠안는다. 당장 아이들 진술서를 받는 데만도 몇 시간이 걸린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사실관계를 작성하라고 해도 바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면 내용이 자기가 겪은 것만 쓰는 게 아니라 들은 것까지도 봤다고 작성한다. 두 아이가 써 온 서면을 보면 ‘도대체 이게 같은 사안을 놓고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내용이다. 그러면 교사는 또 하나 하나 물어가며 다시 작성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원래 다 그렇다. 그게 아이들의 특성이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학폭위가 열리면 회의만 10시간씩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학부모는 의견서만 100페이지를 작성해 온다.”

“그 의견서 다 읽어야지…. 의견진술 기회라는 게 있다. 충분히 주지 않았다가는 학폭위 심의 결과가 무효 또는 취소될 수 있어 막을 수도 없다.”

“충분한 방어권도 보장해야 하고.”

-마치 재판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학폭위는 사법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게 교사가 경찰·검찰 역할도 하고, 변호사 역할도 하고, 판사 역할도 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교내봉사 및 사회봉사 업무까지 책임져야 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송전이라고 보면 된다. 소송할 때 최대한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저쪽이 잘못한 것을 강조해야 하지 않나.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거짓말 전쟁에 빠져든다.”

“당장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진술서를 받아보면 사실관계가 안 맞는다. 정말 80% 정도라도 일치하면 그건 굉장히 잘된 거다. 근데 대부분이 서로의 진술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간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최우선으로 믿기 때문에 교사가 조사한 사실관계 속에 자기 아이가 상대방 아이를 더 많이 때렸다고 나오면 ‘우리 아이를 윽박질러 없는 가해사실을 부풀렸다. 강압조사다’라는 식으로도 몰고 간다. 학폭위를 연다고 해도 사실 진실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교사는 수사권도 없을뿐더러 조사역량도 없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단톡방에서 왕따시키는 아이를 상대로 ‘ㅁㅊㄴ ㅋㅋㅋ’라고 쓰고 다른 아이들이랑 웃는다. 그걸 본 교사가 가해학생에게 물어보면 ‘미친년이라고 한 거 아닌데요? (수업) 마쳤니라고 쓴 건데요?’라고 우긴다. 중학생들은 증거를 들이밀어도 ‘안했다, 모른다’고 나온다. 형사가 와도 진실을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학폭위가 존재할 필요성이 없어 보인다.

“학폭위라는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없는 제도다. 2012년 당시 극약처방으로 나온 것이라 지금에 맞게 변형하지 않는 이상 없어져야 하는 제도라는 지적도 맞다. 지금은 ‘야 이 새끼야’라고만 말해도 학폭위가 열린다. ‘나대고 있네’라고 했다가 학폭위가 열린 적도 있다.”

“현실적으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학폭위가 생겨서 좋아진 점도 있다. 확실히 폭력적인 싸움은 적어졌다. 우리 학교 주변에도 각 학교 ‘일진’ 아이들이 주먹다짐으로 싸우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싸움은 없다.”

“현재의 학폭은 (담임교사 차원에서) 한 번만 덮어주고 용서하려 해도 ‘은폐다, 축소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냥 ‘절차에 따라’ 무조건 학폭위를 열어야 뒷말이 없다. 남들이 봤을 때는 ‘이런 한심한 아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용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싶어도 교사 입장에서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

“폭력의 양상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예전에는 일진이나 집단폭력이 큰 문제였다면 요즘 문제는 ‘언어폭력’이다.”

“맞다. 4~5년 전만 해도 때리고 돈 뺏는 형태의 폭력이 많았는데, 요새는 언어폭력 아니면 왕따나 SNS폭력 등 정신적 폭력 형태가 많아졌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친구들이 나를 버리면 온 우주가 나를 버린 것 같은 큰 상실감을 겪게 된다. 그 순간에는 나를 사랑하는 부모, 이런 것도 없다. 그럴 때는 학교도, 경찰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 같고 극단적인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학폭위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기보다는 일단 피해자가 전학을 가는 식으로 아이 스스로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경우 교사조차도 진실 파악이 쉽지 않다.”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상대방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독립성이 증가하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 학생들은 자신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상대방을 왕따시켜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 그런 시기가 있다.”

“아이들은 그룹을 지으며 관계맺기를 배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과거와 달리 관계를 맺을 줄 모른다. 예전에는 형제가 3~4명이라면 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혼나는 법도 배우고, 상처받는 법도 배우고, 상대를 칭찬하고 양보하는 법을 배우는데 요즘 애들은 거의 외동이다 보니 관계맺을 대상이 엄마·아빠밖에 없다. 관계맺는 훈련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 실전(교실)에 투입되니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관계맺을 줄을 모르니 우리 편 아니면 적, 이렇게 배척시키는 방식으로 잘못된 관계맺기가 이뤄진다.”

-서울시는 학폭자치위를 만들어 학폭위로 가기 전에 화해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어떤 화해기구를 설치해도 학폭위로 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교육현장이 바뀌기는 어렵다.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침이 ‘아무리 사소한 것도 무조건 학폭위에 가서 회의하고 결정하라’였는데 지금에 와서 화해할 기회를 만들어주라고 말만 하면 교육현장이 바로 바뀌는 게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절차로 가긴 가되 회복적 접근처럼 조정과 화해절차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그렇게 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법상으로는 중재를 하더라도 학폭위는 열리도록 돼 있다. 안 열면 불법이다.”

“학교 현장을 불신하는 것이다. 학폭위로 가지 않게 되면 학교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또다시 은폐·무마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예전에는 ‘담임종결’이라는 게 있었다. 사소한 다툼은 교사가 알아서 지도한다는 것이었는데 2012년 도입돼서 2014년까지 3년간 ‘시행하라’는 지침은 있었지만 제대로 홍보도 되지 않고 끝나버렸다. 당시 담임종결을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교육부에 항의가 계속 들어오니 교육부가 슬그머니 ‘담임종결’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제도를 부활시킨다는 것인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현장 교사가 느끼는 스트레스도 커 보인다.

“주변 학교에서 생활부장을 하던 교사들이 1년 마치고 스트레스로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은 사례가 몇 건 있다. 나도 생활부장 하면서 너무 힘들어 관뒀던 적도 있고….”



경향신문

“모두가 괴롭다. 교사가 제대로 해도 욕을 먹는 것은 똑같다.”

“이게 골치인 게, 아이들 둘이서 다퉈서 학폭위는 열려 있는데 둘은 또 화해하고 잘 논다. 그런데 또 막상 다시 물어보면 ‘저는 쟤 때문에 학교 다니기 싫어요’라고 한다. 아이들은 원래 그런 존재다. 자기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중2병이고, 사춘기다. 그 와중에 나는 재심서류를 준비하고 있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고통받고…. 생활부장이 3D업종이 됐다. 매번 학부모·교육청·학생들에게 시달리니 아무도 생활부장을 맡지 않으려 한다. 어떤 때는 교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고…. 그러다보니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데 일부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에게 생활부장·학폭책임교사를 떠맡긴다. 정말 나쁜 경우인데 교사들끼리는 ‘진짜 나쁘다’고 하지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한다. 오죽하면 저렇게 떠맡겼을까 싶은 거다. 이 정도로 교육현장은 심각하다.”

-현재 상황에서 해결방법은 없을까.

“대책을 말하긴 쉽지 않다. 대책이랄 게 없다. 밖에서 볼 때는 ‘도대체 교사가 학교에서 뭘 한다고 불평이냐’고 하지만 학폭위가 한 번 열리면 교사는 20시간 이상을 거기에 투입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교사의 90%가 담임인데 아이를 가르치고 상담하는 데에 몰두해야 할 시간에 학폭 처리에 모든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면 뭔가.”

“학부모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학부모에 대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학부모는 30년 전 자신이 다니던 초·중·고교 교실을 상상하고 그에 맞춰 아이들의 세계를 상상하는데, 지금의 아이들 세계는 30년 전 세계가 아니다. 자존감도 바닥, 소속감도 바닥, 사회생활도 할 줄 모른다. 학폭위로 모든 사안을 가져간다고 해서 내 아이가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한계를 부모도 알아야 한다.”

“교육청에 제안했던 게 학폭 관련 원격강의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학폭위로 사안을 갖고 가면 무엇이 도움이 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말 그대로 적나라하게 부모님들께 알려주라는 것이다. 학폭위에 간다고 해서 내 아이가 무조건 보호받는 게 아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상처를 받는다. 학폭위의 흐름과 부작용을 학부모들도 알아야 한다. 교육당국이나 학교도 할 말은 해줘야 한다. 그 후에 반드시 학폭위로 가져가야 할 사안은 학폭위에서 처리하고, 담임교사가 종결할 수 있는 것은 법으로 교사종결권을 부여해 교사가 해결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정리·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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