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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김현주의 일상 톡톡] 오락가락 교육정책…애꿎은 중3 학생들만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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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법재판소는 자율형사립고 지망생들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막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사고 이사장들과 자사고 지망생·학부모들은 지난 2월 이 조항이 헌법상 평등권과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함께 냈는데요. 이번 헌재의 제동에 따라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 금지' 법령은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시행이 보류됐습니다.

고교입시는 일정에 따라 8~11월 학생을 뽑는 전기와 12월에 뽑는 후기로 나뉩니다. 과학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는 전기에, 일반고는 후기에 입시를 치러 왔습니다. 교육부는 작년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과학고를 제외한 모든 학교가 후기에 신입생을 같이 뽑도록 입학전형을 일원화했으며,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는 일반고에 이중 지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개정 법령하에서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가 불합격할 경우 본인이 원치 않는 일반고에 강제로 추가 배정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입학전형을 일원화한 것은 자사고와 외고가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해 고교서열화와 일반고 침체를 심화시킨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헌재 결정이 나오자 교육당국은 개정 시행령대로 고교입시를 후기로 일원화하되, 가처분이 인용된 이중지원 금지 조항에 대해서는 교육청과 적절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합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6.13선거에서 14곳을 휩쓴 진보교육감도 모두 자사고·외고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 금지'는 이 공약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입니다.

교육은 미래의 인재를 기르기 위한 중차대한 일이라 100년 앞까지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루아침에 정책이 뒤바뀌어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케 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이 자사고·외고에 대한 정책 자체부터 근본적인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며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관련 법령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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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에 지원하는 학생도 2개 이상의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은 구체적인 고입 전형계획을 이달 말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시·도 부교육감 회의를 열어 최근 헌재의 고교 입시 관련 결정에 따른 정책 방향과 후속 대책을 논의한 뒤 이같이 밝혔다.

헌재는 지난달 29일 평준화 지역에서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가 일반고에 이중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평준화 지역에서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의 경우 2지망부터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자사고 불합격생에게 다시 일반고 1순위 지원기회를 주자고 주장했지만, 일반고 지원자가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 지원·배정 절차는 다소 달라질 전망이다. 광역·특별시의 경우 통상 3단계로 학교를 배정(추첨)하는데 자사고 지원자는 1단계에서 자사고를 택하고, 2단계에서 일반고를 선택하면 된다. 여기서 배정을 받지 못하면 3단계에서 본인이 지망하지 않은 학교에 배정받게 된다.

헌재 결정 이전에는 자사고 지원자가 입시에 불합격할 경우 3단계 임의 배정을 받도록 정한 지역이 많았다. 서울의 경우 일반고 지원자는 1단계에서 서울지역 일반고 2곳, 2단계에서 거주지 학군 일반고 2곳에 지원하되 3단계로 가면 임의 배정을 받는다. 하지만 자사고 지원자는 1곳에 지원했다가 탈락할 경우 곧바로 3단계 배정을 받게 했다.

도 단위 평준화 지역의 경우 통상 지역 내 모든 일반고의 순위를 정해 지원하도록 하는데 자사고 지원자는 1지망으로 자사고를, 2지망 이후로는 일반고에 지원하면 된다. 이 같은 원칙은 외고·국제고 지원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시·도 교육청은 이달 안에 고입전형위원회 등을 열어 세부 전형 방식을 확정한다.

교육부는 자사고 입시를 전기(11월 이전 신입생 선발)에서 후기(12월 이후 신입생 선발)로 옮겨 일반고와 함께 시행하도록 한 점에 대해서는 헌재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만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후기전형은 기존 계획대로 올해 12월10일 시작된다. 안정적인 학생 배정을 위해 자사고 합격자 발표일은 내년 1월11일에서 1월4일로 일주일 앞당기기로 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추진은 고교 서열화와 입시 위주 교육의 부작용을 해소해달라는 국민 목소리에 바탕을 둔 결정"이라며 "고교체제 개편 정책은 큰 틀에서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3 학생들 입시 셈법 복잡해져

교육당국이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허용한 가운데, 일부 중3 학생들의 입시 셈법이 복잡해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대입제도 개편과 맞물려 현 중3의 고입 전략도 당분간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헌재가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금지한 법령의 효력을 정지, 각 시•도 교육청은 이달 말까지 고입전형 세부계획을 다시 짜기로 했다.

평준화 지역뿐 아니라 입시의 큰 틀이 바뀌지 않은 비평준화 지역도 세부사항이 다소 바뀔 수 있다는 게 교육당국의 설명이다.

중3 학생·학부모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원거리 학교에 배정받을 각오를 하고 자사고에 지원해야 하는 부담은 다소 줄었지만, 전형 시작을 6개월 앞두고도 계속 바뀌는 정책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사고·외고 지원에 따른 불이익은 상당 부분 사라지겠지만, 고입을 앞둔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고교 선택의 최대 변수인 대학 입시제도마저 오리무중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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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은 8월 말에나 나온다. 현재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가 4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공론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시험의 변별력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고교 내신성적의 중요성이 커져 입시 전략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현 중3의 경우 올해 9월까지 적지 않은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자사고·외고 지원자 불이익이 상당히 줄었지만 진학해도 헌재 최종 판결에 따라 당장 내년에 다시 자사고·외고가 흔들릴 수 있다"며 "특히 올해 8월에 대입 개편안이 나오는 만큼 이를 고려해 (진학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해온 자사고 폐지 움직임 제동?

이런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시내 자사고 6곳에 대해 내린 지정취소 처분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로써 자사고 지정취소 권한을 둘러싼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 간 3년8개월에 걸친 법적 분쟁이 교육부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이 시·도교육감의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해온 자사고 폐지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법원 3부는 지난 12일 서울특별시교육감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낸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행정처분 직권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서울서교육청은 조희연 교육감 시절인 2014년 10월 시내 자사고 재평가를 실시한 뒤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등 6개교를 지정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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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한 것이 교육감의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하고, 행정절차법과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위반한 것이라며 지정취소 처분을 직권취소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지정취소는 교육감의 권한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행사한 것으로 시정명령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직권취소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지방자치법은 광역자치단체장이나 시·도교육감의 사무에 관한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될 경우 주무장관이 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이나 시·도교육감이 주무장관의 처분에 이의가 있는 경우 15일 내 대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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