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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내 책을 말한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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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할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할아버지가 눈을 감던 날을 잊지 못한다. 마지막 날이었다. 며칠째 굳게 닫혔던 할아버지의 입술 사이로 "손잡아다오"라는 문장이 흘러나왔다. 불현듯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오랫동안 쟁여진 문장처럼 느껴졌다.

조선일보

이기주 작가


살아가는 일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시간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밤하늘의 별처럼 가물거리다가 서서히 흐릿해진다. 그 사라짐 속에서 우린 온갖 이별을 겪는다.

소중한 사람과 존재는 우리 곁을 떠날 때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소중한 무언가를 남겨둔 채 떠나거나 소중한 무언가를 떼어내 가져간다. 그러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겨우 깨닫는다. 시작되는 순간 끝나버리는 것들과 내 곁을 맴돌다 사라진 사람들이 실은 여전히 내 삶에 꽤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날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내 곁을 머물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기억,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마음에 잔잔히 물결을 일으킨 일상의 풍경과 이야기를 '한때 소중했던 것들'(달)에 담았다. 책을 준비하면서 많이 울었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어 독자라는 달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이 책 속에 잠시 머물렀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이 책을 덮은 뒤 소중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가 세월이라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전에, 모든 추억이 까마득해지기 전에….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하다. 우린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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