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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Why] 공정위 압수수색한 검찰의 속내는… 재벌 수사 주도권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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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잠금해제] 검찰, 공정위의 취업거래 의혹 수사

조선일보

검찰은 지난달 20일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 수색했다. 검찰에 따르면 공정위는 퇴직을 앞둔 고위 간부 명단을 만들어 관리하고, 이들의 대기업 취업을 위해 미리 기업 관련 업무에서 제외하는 등 경력 관리를 해줬다고 한다. / 세종=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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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핵심 부서인 기업집단국 등을 압수 수색했다. 검찰이 사정(司正) 기관을 상대로 압수 수색을 진행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압수 수색은 오전 9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강도 높게 이어졌다. 공정위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낮은 수준의 제재를 하고 공정위 관계자들이 대기업이나 유관 기관에 불법 취업을 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5일과 10일에도 추가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공정위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김상조 위원장 부임 후 경제민주화의 컨트롤 타워를 맡으며 조직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는데, 때아닌 날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압수 수색 없이도 자료 제출이 가능한 사안 아니냐"면서 "검찰의 수사 의지가 센 것 같다"고 했다. 임직원들은 어느 선에서 처벌이 이뤄지고, 누가 대상이 될 것이냐를 주로 얘기했다. 검찰이 공개수사에 나선 이상 관계자 처벌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두 명의 핵심 국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때보다 더 치욕적인 해가 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전속고발권 둘러싼 갈등이 이유?

공정위는 검찰의 광범위한 압수 수색에 다른 속내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검찰과 공정위의 갈등이 수사의 이유가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전속고발권은 기업 담합과 같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제도로 검찰은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압수 수색 시기가 공교롭다. 이 사안에 의견을 내놓을 공정거래법 특위가 폐지보다는 보완·유지로 의견을 가닥을 잡는 등 논의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김효준 변호사는 "전속고발권 논의는 공정 거래 분야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는 일과 관계된 일"이라며 "리니언시(자진 신고 감면)제도 등 세부적 의견 차이가 큰 상황"이라고 했다.

비슷한 상황은 과거에도 벌어졌다. 지난 1996년 공정위가 대기업 고발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일자 검찰이 나섰다. 고발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 요청하면 이후에 공정위가 고발하도록 하는 '고발요청권'을 달라고 한 것이다. 이후 실제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같은 해 공정위 독점국장과 정책국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공정위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는데, 이런 수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2007년 지하철 7호선 입찰 담합과 관련해 공정위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고발하자 검찰은 공정위를 압수 수색하는 강수를 뒀다. 이 역시 전속고발권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시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압수 수색을 받은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검찰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검찰과 공정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의 권한에 불만을 나타내왔다. 검찰은 공정위가 비위를 발견하고도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상엽 공정거래조사부장은 공식 석상에서 "공정위가 조사하는 사건이 캐비닛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모른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공소시효가 임박한 상태로 사건을 넘겨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소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한다. 실제 공정위가 올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담합 사건의 80% 이상이 공소시효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에 넘어왔다.

공정위는 강제 조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많다고 항변한다. 공정위는 현장조사권, 자료 제출 요구 및 영치권 등은 가지고 있지만 압수 수색 등 권한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정위에 사법경찰권을 주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삼기도 했는데, 검찰은 반대편에 섰다.

공정거래수사부와 기업집단국

전속고발권 관련 논의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다루는 1차 조사 권한이 어디 있는지를 정하는 일이다. 법조계 여러 영역 중에서도 돈이 되는 분야다. 로펌이나 기업에서 검찰, 공정위, 법원 출신의 전관(前官) 영입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조사부, 공정위는 기업집단국을 각각 새로 만들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조세조사부가 있던 것을 공정거래조사부와 조세범죄수사부로 확대 개편했다. 힘을 실은 것이다. 검찰의 꽃은 여전히 특수부라지만, 최근엔 공정거래조사부를 선호 부서로 희망하는 검사들이 많아졌다. 대기업과 재벌이 관련돼 굵직한 수사가 많고, 검경수사권 조정 후에도 여전히 검찰 입김이 큰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다.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할 때도 경력은 몸값을 결정짓는 중요 요소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공정위를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게 했던 '조사국'을 부활시킨 것이다. 김 위원장의 재벌 개혁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 부서는 기업의 불공정 거래 사건을 다루는 카운터 파트다. 그런데 이 공정거래조사부가 기업집단국을 압수 수색한 것이다. 공정위 입장에선 당연히 껄끄러운 일. 압수 수색 후에는 여러 관계자가 압수된 자료를 설명하는 등의 이유로 참고 조사를 받아야 한다. 보통 언론에 알려지는 1명을 조사하기 위해선 10여명의 관계자가 조사를 받는다.

검찰은 공정위가 기업의 공시 자료 허위 제출, 차명계좌 보유 혐의 등을 발견하고도 낮은 수준의 제재를 하고 검찰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가 이 과정에서 전·현직 관계자들을 재취업시켰는지도 의심하고 있다. 일종의 취업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공정위는 퇴직을 앞둔 고위 간부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이들의 대기업 취업을 위해 미리 기업 관련 업무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경력 관리를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 매해 10명가량의 퇴직자가 이런 식의 특혜를 봤다고 한다.

공정위 측은 각각에 대한 조사는 할 수 있지만, 두 혐의 간 연관성은 없다고 반발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취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간직들 일부가 퇴직 후 자리를 찾았고, 대부분 고위 공무원은 취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득 본 검찰, 엉뚱한 비판 공정위

검찰은 이번 수사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 서정욱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선 재벌 개혁의 상징인 공정위를 수사해 존재감을 나타내면서 해묵은 비리까지 캐내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다"며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재벌 수사에서 검찰 발언권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공정 거래 관련 부분에서 주도권을 챙기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015년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만들었고, 지난해엔 관련 국제 회의체인 국제경쟁네트워크(ICN)에도 가입했다.

공정위는 김 위원장 취임 전 과거에 있었던 일로 선을 긋고 있지만 신뢰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의 잘못으로 적폐 수사를 받은 국정원 등 다른 사정 기관도 사기 저하와 신뢰도 하락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검찰 수사를 신뢰한다면서도 내부에서 공정위에 대한 견제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그는 압수 수색 이튿날 내부 전산망에 '이번 검찰 조사 등 외부의 견제와 비판이 거센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위원회에 부여된 막중한 소임인 재벌 개혁, 갑질 근절, 혁신 성장,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등의 업무가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 나가도록 하자'고 썼다. 이는 과거에 일어난 불분명한 혐의로 강제 수사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됐다.

김 위원장은 압수 수색 후 닷새 후인 지난달 25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원 조회를 열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후 1년 만에 처음 만든 자리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담담한 표정으로 모든 직원과 악수를 나눴다. 그는 이날 "저 역시 참으로 괴롭고 기나긴 한 주였다"고 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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