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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백영옥의 말과 글] [55] ‘빈 공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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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돈이 없는 사람은 왜 계속 돈이 없을까?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왜 매일 시간 부족에 시달릴까? 행동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과 엘다 샤퍼(Eldar Shafir)는 우리에게 돈, 시간 등등이 결핍됐을 때 인간의 행동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그들은 결핍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마음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핍의 악순환은 짐 싸기에 비유할 수 있다. 큰 가방으로 짐을 싸는 사람은 운동화나 우산을 넣을 때 그저 운동화가 필요한지, 우산이 필요한지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작은 가방으로 짐을 싸는 사람은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선택을 쉽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산을 넣지 않았다가 혹시 비가 오면? 운동화를 넣지 않았는데 산에 올라가게 되면?이란 가정 속에서 계속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핍의 악순환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주말이면 사람들은 일정을 비워두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치를 누린다. 아무것도 고르지 않을 여유를 주는 것이다. 유대교의 안식일 역시 결핍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어느 것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를 막는 인류의 발명품이다. 뉴욕 맨해튼 중심의 센트럴 파크를 구글 맵에서 보면 텅 비어 있는 사각형의 녹색 공간으로 보인다. 맨해튼의 도시설계자였던 로버트 모지스는 설계 도중 자신이 들었던 귀중한 조언을 이렇게 증언한다.

"만약 맨해튼의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으면, 5년 후에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

바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빈 공간’인지도 모른다.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같은 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는 동료의 실수를 무능함이 아닌 피곤함으로, 짜증을 연민으로 바꾼다. 만약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이라면, 거기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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