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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순혈주의' 현대車, 외국기업과 협업에 눈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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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M&A(인수·합병) 시장에서 현대차가 미국의 빅3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를 인수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올 초 현대차 지배 구조 개편 과정에서도 현대차와 갈등을 빚었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에 FCA 인수를 제안할 것이란 다소 황당한 얘기도 나왔다. 현대차 임원들은 소문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의 방향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 미래차를 위한 스타트업 기술 투자는 늘릴 계획이지만 기존 완성차 기업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를 두고 M&A 업계에선 최근 왕성한 해외 투자를 진행하는 현대차를 M&A 플레이어들이 한번 떠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조선비즈

현대차가 지난 6월 부산모터쇼에서 미래차의 방향성을 제시한‘르필루즈’. 현대차는 자율주행·커넥티드카 등 ICT 기술이 접목된 미래차를 위해 최근 해외 기업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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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M&A 업계가 주요 플레이어로 볼 만큼 현대차가 요즘 확 달라졌다. 과거 독자 기술 개발만 고집하던 순혈주의를 버리고 해외 기술 기업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10개월간 7건 투자… 빠른 혁신 위해선 협업이 답

현대차는 그동안 외부 투자나 M&A에 큰 관심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쇳물(현대제철)부터 부품(현대모비스)까지 모두 직접 만들어 수직 계열화해 왔기 때문이다. 1997년 일본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를 양산하며 특허 장벽을 세우자, 현대차는 이를 따라잡기 위해 10여 년을 독자 개발에만 몰두했다. 1998년 개발에 착수해 2013년 양산에 성공한 수소차도 현대차의 단독 작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율주행·커넥티드카 등 미래차에 인공지능·통신 등 ICT가 필요해지자, 독불장군식 순혈주의로는 버티기 힘들게 됐다. 현대차는 최근 10개월 동안에 해외 기술 기업 7곳에 투자하는 등 해외 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 10월 인공지능 음성 인식 기술 기업 사운드하운드(미국)에 55억원을 투자했고, 12월엔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기술 기업 옵시스(33억원), '아시아의 우버'라는 싱가포르 그랩(270억원)의 지분을 사들였다.

올해에는 전고체 배터리 업체 아이오닉머티리얼(미국·55억원), 자율주행차용 레이더 전문 스타트업 메타웨이브(미국), 커넥티드카를 위한 통신 반도체 기업 오토톡스(이스라엘), 차량 공유 기업 카넥스트도어(호주)에도 투자했다.

투자 없이 상호 기술을 공유하는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아우디와 수소차 기술 공유를 위한 동맹을 맺었고, 핀란드 에너지 기업 바르질라와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개발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인공지능 초고화질 카메라 기술 기업 딥글린트(중국)와도 협업하기로 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가 추진하는 자율주행 프로젝트 '아폴로'에도 참여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차는 빠르게 발전하는 ICT와 접목된 '달리는 컴퓨터'가 되는 만큼, 협업 없이 자체 개발만 고집하다가는 속도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오픈이노베이션 센터 5곳에서 협업 대상 발굴

'협업을 통한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은 정의선 부회장이 강조하는 분야다. 그는 지난해 현대차의 이스라엘 스타트업 발굴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이스라엘은 창업 국가라 할 만큼 창업·혁신이 활발한 곳이다. 정 부회장은 작년 5월 해외 출장 도중 이스라엘에 들러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방문하고 5개월 후 모빌아이 암논 샤슈아 CEO와 만나기도 했다. 그 직후인 11월 현대차는 "이스라엘의 유망 스타트업과 손잡고 미래 자동차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고 한 달 뒤 이스라엘 옵시스 투자를 단행했다.

정 부회장은 해외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와 서울 강남에 2곳을 설립했고, 연내에 이스라엘, 중국, 독일까지 총 다섯 도시로 확대해 개방형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5월 서울 센터인 '제로원'에서 "현대모비스를 통해 전장 사업 분야 네다섯 기업의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의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다소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글로벌 완성차·부품·차량공유·ICT 기업 등의 협업 네트워크는 이미 구축됐고, 똘똘한 기업도 모두 팔린 상황"이라며 "지분 투자를 통한 협업보다는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wel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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