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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블록체인發 에너지 혁명' 시작됐다 소비자가 직접 에너지 생산·거래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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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데이터 분산 저장) 기술로 에너지 산업이 탈(脫)중앙화를 이룰 것이다. 소비자(개인)가 직접 생산한 에너지를 중앙의 중개기관(전력회사) 없이 직거래하는 것이다. 미래 에너지 산업의 중심은 공급회사가 아니라 소비자이다."

파올로 타스카(Paolo Tasca) 영국 UCL 블록체인테크놀로지센터장은 6월 21일 조선비즈와 사단법인 우리들의 미래가 공동 주최한 '2018 미래에너지포럼'에서 에너지 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이끄는 블록체인에 대해 발표했다.

개인이 직접 태양광, 풍력을 이용해 전기 생산에 참여하는 분산형 발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앙의 전력 회사가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하던 방식 대신 개인이 직접 에너지 생산·판매에 참여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개인간(P2P) 전력 거래 플랫폼(도구)으로 거래의 안정성·투명성·신속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데이터를 중앙 서버(대형 컴퓨터) 대신 소비자·판매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에 분산시켜 보관한다. 실시간 거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판매자와 소비자를 빠르게 연결해준다.

◇블록체인이 에너지 생태계 바꾼다

영국의 에너지 블록체인 회사 '에너지마인'의 오마르 라힘 창업자는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블록체인으로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분산형 발전에 참여할 것"이라면서 "에너지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으면 (스마트폰 시대의) 노키아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전력회사가 기존의 송·배전 사업만 고수해선 회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이웃 간 전력거래가 활성화되면 발전소에서 수백~수천㎞ 떨어진 곳에 전기를 보내지 않아도 되며, 송전탑을 곳곳에 세우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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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마르 라힘 창업자. 파올로 타스카 센터장. 닉 마르티니욱 공동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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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카 센터장은 "에너지뿐 아니라 금융, 의료, 교통도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블록체인 기술이 소비자 중심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플랫폼 장악이라며, "중앙에서 권한을 가지고 플랫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소비자가 공동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고 했다.

리투아니아의 에너지 블록체인 회사 위파워의 닉 마르티니욱 공동창업자는 "현재 블록체인을 활용해 에너지 사업을 하는 기업은 대부분 개인(소비자)이 만든 전기를 판매하는 '에너지 프로슈머' 사업 모델이 많다"면서 "위파워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자의 자금 조달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개인간 전력거래 활성화에 이어 에너지 신산업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일례로 위파워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자가 앞으로 생산할 에너지(계약서)를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 있고, 투자자는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다. 에너지마인은 블록체인 기반 에너지토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에너지절감형 제품을 이용하면 보상으로 가상화폐인 에너지토큰을 제공하는 것이다.

규제 풀어야 혁신 기회 생겨

타스카 센터장은 미래 에너지 플랫폼 장악을 위해서는 "정부와 시장참여자는 물론이고 비(非)에너지 기업과의 협력도 필요하다"며 "정부간 대화,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을 만들 수 있고, 다 같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은 복잡하고 국가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술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의 기술로는 블록체인끼리 상호 운용이 어려운데, 이러한 문제점을 국가, 기업간 협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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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미래에너지포럼’이 6월 21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렸다. ‘블록체인과 에너지’를 주제로 다룬 세션2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태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파올로 타스카 영국 UCL 블록체인테크놀로지센터장, 오마르 라힘 에너지마인 창업자, 김숙철 한국전력 기술기획처장.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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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카 센터장은 “미국, 호주, 유럽에서는 분산형 발전으로 생산된 에너지를 거래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정부·지자체 지원이 많다”면서 “한국의 경우 ‘규제 샌드박스(sandbox·기간을 정해놓고 규제를 일시 정지시켜 새로운 산업을 허용하는 것)’ 방식으로 산업과 기업을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의 이점보다 위험성만 보고 규제하면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있기에 규제 속에서도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마르티니욱 공동창업자는 “한국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싶지만 규제가 많다”며 “블록체인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규제가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라힘 창업자는 “미국이 블록체인 규제를 강하게 해서 (산업) 혁신을 막았다”며 “한국은 블록체인 분야에서 잠재력이 큰 만큼, 산업 상황에 맞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배터리 기술, 에너지 신사업에 유리

라힘 창업자는 “미래에는 인간이라는 중개인 없이 기계끼리 에너지를 주고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소비자가 자고 있는 동안 전기차를 충전하면서 이웃의 전기차로부터 전기를 공급받고, 전기차에서 사용하고 남는 전기는 집안의 가전기기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미래에는 전기차가 에너지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한국이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낸다면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이 이 분야(블록체인 기반 에너지 사업)에서 선두가 될 수 있는 이유로는 기술적으로 얼리어답터이며, 하드웨어 기술이 뛰어나 신뢰가 높다”고 했다. 특히, 한국이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핵심인 세계 최고의 배터리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에너지저장 시장을 개척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라힘 창업자는 “태양광,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는 저장이 중요하다”면서 “유럽 국가들도 아직 에너지저장과 관련해 명확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한국 정부가 기업들에 ESS 활용을 장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티니욱 공동창업자는 한국이 산악 지형이 많아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불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에는 공간이 없지만, 조금만 이동하면 태양광, 풍력 발전이 가능한 곳이 있다”고 했다.

: 블록체인(blockchain)

특정 데이터를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사용자 컴퓨터에 분산 저장해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한 시스템. 가상화폐 거래내역 등 데이터가 담긴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chain)한 모음이란 뜻이다. 가상 화폐는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가로 준다.

설성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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