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아이디어가 금세 눈앞에
세상에 없던 생활용품도 만들어
몸집 작아지고, 몸값 싸져 인기
‘금 나와라 뚝딱!’을 외치며 도깨비 방망이를 때리면 진짜로 금이 나오는 동화 속 마법의 주문이 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상상한 물건이 눈앞에 나타나는 비현실적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로 불리는 3D프린터 얘기다. 최근 수년간 산업 현장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3D프린터가 우리에게 한걸음 더 다가왔다. 몸집은 작아지고 가격은 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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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인사이드 3D프린팅 코리아’에서 3D프린터로 마블 캐릭터인 ‘그루트’를 제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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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산업용 3D프린터로 자동차 엔진, 항공기 부품을 만들면 밀도를 줄여 제품 무게가 가벼워지고 연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언제든 설계도를 수정할 수 있어 업체가 마음껏 도전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업체 페라리는 지난해 F1의 엔진 피스톤을 3D프린터로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기존에 사용해온 알루미늄 합금이 아니라 강도가 뛰어난 스틸 합금을 사용한 새로운 엔진 피스톤을 과감히 만든 것이다.
산업용 3D프린터는 건축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인다. 2014년 중국 상하이의 설계회사인 상해영창장식설계공정회사는 3D프린터로 뽑아낸 구조물을 조립해 하루 만에 200㎡의 집 10채를 뚝딱 완공했다. 내년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드라이트 구역에 3D프린터로 제작한 보행자용 강철 다리가 설치된다. 네덜란드 로봇업체 MX3D가 6개월 만에 완성한 이 다리는 길이 12.5m, 폭 6.3m로 스테인리스스틸 4.5t과 와이어 1100㎞가 투입됐다.
수련의(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1년간 임상 실습을 받는 사람)에게도 3D프린터는 ‘고마운’ 존재다. 심장·뇌혈관, 자궁, 세포 같은 치밀한 조직을 그대로 흉내 낸 3D프린터 출력물만 있으면 혈관에 카테터(의료용 고무 또는 금속제의 가는 관)를 삽입하거나 어려운 수술을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어서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에서 3D프린터로 출력한 인체 모형을 대거 사용하고 있다. 산업용 3D프린터의 가격대는 최저 2000만원대부터 최고 20억원대까지 다양하다.
200만원 이하 보급형 기종 다양
3D프린터로 3D 출력물을 만들어내는 인재, 일명 ‘메이커’를 키우는 데도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지난해 5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민간의 다양한 창작 프로젝트와 지역의 자생적인 메이커 활동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서울형 메이커 교육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2022년까지 이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상상하고, 만들고, 공유하는 서울형 메이커 교육은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메이커 괴짜’를 키우기 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다. 올해 28억원, 이후 5년 동안 100억원을 더 투자해 3D프린터·3D펜 같은 메이커 교육 기자재 구입비용을 지원한다.
서울 성북동의 홍대부속중학교는 2016년 교내 ‘홍익로봇’이라는 IT동아리를 대상으로 3D프린팅 수업을 시범적으로 진행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해 학교 예산을 따로 편성해 3D프린터 한 대를 구입했다. 올해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1000만원을 지원받아 3D프린터 5대를 추가로 들였다. 수업을 담당한 홍대부속중 최영진(39) 교사는 “휴대전화 거치대 겸 연필꽂이, 입체 명함 같은 창의적인 제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간도 생겨
3D프린터 출력을 대신해 주는 기업도 있다. 서울 서교동의 글룩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SK 회장, 황창규 KT 회장 등 대기업 총수가 이곳에서 자신의 전신상을 출력해 갔다. 특히 황 회장은 야구복을 입고 야구 방망이를 든 모습에 20년 전 젊은 얼굴을 입힌 상상물을 만들었다. 단순한 출력뿐 아니라 출력물에 색을 입히는 후가공 작업도 서비스한다. 홍재옥 글룩 대표는 “월 50~100건가량 제작 주문을 받는데 일반인의 주문건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용’ 3D프린터 5대 중 1대는 미국의 스트라타시스·3D시스템스가 점유하고 있다. 미국의 휼렛패커드·GE, 네덜란드의 필립스 같은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보급형’ 3D프린터 시장에선 대만의 ‘XYZ프린팅’이 두각을 나타낸다. IT 시장 조사기업인 콘텍스트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전 세계 보급형 3D프린터 출하량 보고서에 따르면 XYZ프린팅이 세계 시장의 25%를 점유해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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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로 49시간 만에 만든 오토바이 모형. |
지난해 국내에선 신도리코가 보급형 3D프린터 시장의 40% 정도를 장악했다. 윤후석 신도리코 홍보실 차장은 “2016년 3D프린터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2D 출력기 제조 노하우와 애프터서비스를 접목한 덕에 단숨에 국내 브랜드 중 1위로 도약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보급형 3D프린터가 생활에 들어왔지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한정된 색상이다. 프린터에 넣을 수 있는 잉크 카트리지가 1~2개에 불과해 한번에 출력할 수 있는 색상이 많아야 두 가지에 그친다. 완성된 출력물에 원하는 색상의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후가공이 필요하다. 재료가 필라멘트에 한정돼 있다는 점도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저가 제품에선 출력 도중 멈추기도 한다. 나광균 신도리코 품질평가팀 과장은 “중국에서 수입된 저가의 가정용 3D프린터 중 에러가 나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 하는 불상사가 종종 일어난다”며 “제품을 끝까지 안정적으로 잘 만들어내는 기술력이 업체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글=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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