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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박종면칼럼]'동이불화'(同而不和) 52시간 근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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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우리나라 진보·좌파진영의 스승을 한 사람 꼽는다면 고 신영복 선생이 아닐까 싶다. 진보진영에서는 그가 지금도 활동한다면 진보가 권력을 잡은 현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신영복 사상의 핵심이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논란이 많겠지만 그가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자기와 다른 가치까지 존중하는 화(和)의 논리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신영복은 자신의 저서 ‘강의’에서 ‘논어’에 나오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만 하지 공존하지 못한다)를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대륙적 소화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불교 유학 마르크시즘 자본주의 어느 경우도 더욱 교조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정권에 반대하는 촛불혁명을 기반으로 출발한 문재인정부의 정책들이 경직적이고 교조적이라는 점에서는 이명박-박근혜정권을 빼닮아가고 있다. 극우와 극좌는 서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이달부터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 역시 교조적·경직적으로 운용된다.

노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고, 근로시간 단축은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를 하고 있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과 삶의 균형은 매우 절실하다. 따라서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반대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실제 운용에 들어가면 문제가 복잡하고 개선할 게 한둘이 아니다.

52시간 근로제는 당연히 노동시간 측정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시간을 측정하고 계량하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특히 화이트칼라일수록 전문직종일수록 그렇다. 근본적으로 화이트칼라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근로시간보다 성과와 생산성에 방점을 둬야 한다. 이들에겐 사무실에 몇 시간 앉아 있느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을 토대로 성과를 내는 것이다. 블루칼라 공장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곧 생산과 매출로 직결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노동시간만 강조한다면 창의적이어야 할 전문직 화이트칼라는 단순 사무직으로 전락하고 만다. 전문직 화이트칼라의 하향평준화 내지 왜소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 같은 현상은 국가 및 기업 경쟁력에 치명적인 훼손을 가져온다.

52시간 근무제는 교조적·경직적이기 보다 유연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업의 특성에 따라 탄력근로제나 재량근로제 등이 적극 활용돼야 한다. 노조나 시민단체 등이 탄력근로제나 재량근로제를 편법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또 연간 일정소득 이상 고소득 전문직은 노동시간 규제대상에서 제외하는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같은 것을 도입하는 것이다.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자신의 전문성 때문에 사용자와 대등한 교섭력을 갖고 있어 법의 보호가 필요치 않을뿐더러 근로시간 규제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면 근로시간 단축 및 조정과 관련, 정부는 법정근로시간(주40시간)이나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통상임금의 1.5~2배) 등만을 규제하고 실제 근로시간 조정이나 운용은 노사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52시간 근로제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정책이 아니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책이 돼야 한다.

박종면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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