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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1090㎜ 물폭탄에 '방재 선진국' 일본도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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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西일본 사망 85명·60여명 실종

전철 등 교통 한때 거의 올스톱, 2층집 10초만에 수십m 밀려 붕괴

간사이(關西) 지역을 포함한 일본 서부에 지난 5일부터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8일 밤 11시 현재 85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행방불명됐다. 서일본 곳곳에선 토지 유실, 침수, 주택 붕괴, 교통 두절 사태가 발생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각 지역에서 피해가 계속 확인되면서 폭우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8일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 시내가 물에 잠겨 노인과 아이를 안은 여인들이 보트를 타고 구조되고 있다. 구조대원들의 허벅지까지 물이 차 있다(왼쪽). 7일 규슈 사가현 가르쓰 시(市)에서는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나면서 운행 중이던 JR 열차를 나무와 흙더미가 덮쳐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로이터·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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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훈련도 잘된 일본이지만 유례없는 폭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일본 고치(高知)현 우마지(馬路)에서는 지난 5일부터 3일간 1091㎜의 비가 쏟아졌다. 연평균 강수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비가 단 3일에 걸쳐 퍼부은 것이다. 기후(岐阜)현도 4일간 1052㎜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일본 기상청은 서일본에 통상 7월 한 달간 내리는 비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비가 3~4일 만에 내렸다고 밝혔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5일부터 매시간 '기록적인 폭우 피해'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하고 있다. 인명 피해는 히로시마(廣島)현에 집중됐다. 사망자 중 30명 이상이 이 지역에서 나왔다. 히로시마현의 산간지역에선 주택 수십 채가 비에 쓸려가 버렸다. 한 주민은 요란한 소리가 나서 창밖을 보니 바로 토사가 집을 덮쳤다고 했다. 2층짜리 주택이 수십m 밀려가 붕괴하는 데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주민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도 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탄식했다. 서일본 지역의 교통은 한때 거의 '올스톱' 상태였다. 일본 사가(佐賀)현에서는 달리는 전차에 토사가 쏟아져 탈선했다.

조선일보

폭우는 얼마 전 소멸한 7호 태풍 '쁘라삐룬'의 영향이 켰다. 일본 남부에서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공기가 서일본으로 몰리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져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는 것이다. 일본 기상청은 위험성을 사전에 감지, 5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서 "큰비가 동시적으로 여러 곳에서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6일 저녁부터 7일 오후에 걸쳐서 서일본 일대에 '대우(大雨)특별경보'를 발령했다.

히로시마, 사가 외에도 교토(京都)·나가사키(長崎)·후쿠오카(福岡)·기후(岐阜)·효고(兵庫)·돗토리(鳥取)·오카야마(岡山)등 9개 부현(府縣)에 특별경보를 내렸다.

하지만 이 지역의 공무원과 주민은 1000㎜ 안팎의 비가 내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2013년부터 큰 폭우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이 있었지만 피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현지 방송과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서 위험성을 알린 것이 전부였다. 기계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각 단체장이 기상청과 연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피해를 줄였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지만 관민(官民)이 '설마' 하고 방심한 결과, 지반이 허물어지고 주택이 유실되기 시작하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8일 오후부터 대우특별경보는 해제됐다. 그러나 일부 지역엔 여전히 토사 경보가 발령 중이어서 수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기록적인 피해에 당황하고 놀라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8일에야 총리 집무실에서 대책을 논의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교민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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