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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요즘의 문학 비평, 현란한 修辭만 있고 남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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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학' 펴낸 김인환 교수 "현학적 사고 반성하려 통계학 공부"

1980년 5월 18일 새벽, 군인들이 고려대학교 기숙사를 에워쌌다. 젊은 교수는 시위를 논의하던 학생들이 걱정돼 "어서 자라"며 건물 전력차단기를 내려버렸다. 곧 군인들이 들이닥쳤고, 교수는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군인들에게 '애들 때리지 말아 달라'고 빌고 다니면서 참 착잡했다. 선생이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있나. 내가 가르쳐 온 문학이 과연 이런 때 뭘 할 수 있나…."

김인환(72)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금껏 통계학 책을 꺼내 읽고, 최근 인문서 '과학과 문학'을 펴낸 이유다. "그 막막한 밤 이후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내 문학적 사고를 반성하게 됐고, 자의적이고 현학적인 문학 비평에 실망할 때마다 통계학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문학도가 통계학 책들을 읽으며 생각한 바를 정리한 자기반성의 기록이다."

조선일보

김인환 문학평론가는“젊었을 때 소설을 썼다는 게 큰 다행”이라며“소설 안 써 본 평론가들은 모든 문제에서 철학만을 논하는데 직접 써보면 문장의 사소한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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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뒤집어질 듯 세상이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다. "'뭐라도 좀 확실한 게 없나?' 싶었다. 그러다 책장에 꽂혀 있던 '심리통계학 입문'을 읽게 됐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신뢰 구간' 같은 개념이 위안이 됐다. 불확실한 뭔가를 추론할 질서가 있다는 것. 문학 공부와 병행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그 공부에서 얻은 한 가지는 "객관성과 엄밀성을 놓치면 문학 비평은 지적 사기가 된다"는 것. 그는 "평균, 표준편차의 개념으로 전체의 분포 상태를 거론하지 않고 예외적인 한 가지에 너무 몰입해 과장하거나 대서특필하는 게 문제"라며 "지금의 문학비평은 현란한 수사(修辭)에만 집착해 읽고 나면 정작 남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가 말했듯, 사회와 개인을 분모·분자 관계의 분수 개념으로 보자. 사회가 바뀔 때 개인의 값도 함께 바뀐다. 현재의 사회가 바꿔놓은 개인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시장형 인간의 양산일 것이다. 비평가가 비평으로 인기를 얻으려 하고, 시장형 인간이 되려 해선 안 된다. 말은 소박하더라도 진지한 사유, 정면의 사유가 필요하다."

논의는 자연스레 대학 교육의 문제로 흘러간다. 그는 "과학과 미학의 하나 됨을 추구한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화이트헤드"를 언급하며, "교양 교육에서 수학·통계학·논리학의 비중을 높여 한두 과목 반드시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부제는 '한국대학 복구론'.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에도 시(詩)와 유클리드 기하학이 인류의 두 보배로 나오지 않나. 하나만으론 충분치 않고,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1980년의 그 밤으로부터 40년 가까이 흘렀으나 문학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그렇기에 평생 몰두해야 하는 것이었다. "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인간의 속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시 '열등생'에서 말하듯, 열등생도 고유의 내면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 문학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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